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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시끄럽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하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와 사법당국의 ‘내란죄’ 수사로 국민들의 편 가르기가 본격화됐다. 탄핵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비상계엄에 동원됐던 군 장성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대통령 체포영장의 집행과정에서도 체포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관저 주변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며 자신의 주장을 반복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현직 대통령이 내란죄로 체포되고 계엄선포 54일 만에 구속기소됐다. 매스컴은 여기에 ‘사상 최초’ 또는 ‘사상 초유’라는 수식어를 단다.
각 정당과 검사, 변호사, 헌법재판관, 판사, 법학자, 목사, 군인, 장관, 대행 등이 서로 다른 의견과 논평으로 국민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 거기에 극우 유투버까지 가세해 말 그대로 백가쟁명의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며 처단하자고 선동한다. 급기야 대통령 구속연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서 법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폭동까지 TV 생중계로 봐야했다.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라는 현대적인 제도는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에서는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국제 신인도는 형편없이 떨어지고,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경제는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론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게 나라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봉건왕조 시대 인재등용 기준으로 사용했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다시 생각해보자.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검사, 판사, 헌법재판관, 군인 등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나라의 녹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신언서판을 명심해야 한다. 신언서판의 유래는 중국 당나라시대 당 태종에서 시작되었다. 당 태종이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자 과거제도를 실시했는데, 이는 천자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고 인재를 얻을 수 있는 2가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당 태종은 과거에 급제한 인물들을 바로 등용하지 않고 ‘신언서판’이라는 네 가지 선정기준을 마련해 평가 후 관리로 등용했다. 신(身)은 외모를 뜻하며, 신체에서 풍기는 진정한 의미의 풍모를 말한다. 언(言)은 언변을 뜻하며, 말을 함에 있어서 이치에 맞고 자신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솜씨가 된다. 서(書)는 글씨를 뜻하며, 글씨는 곧 자신의 인격을 나타낸다. 판(判)은 판단력을 뜻하며,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용모·언변·필적·문리의 인재평가 기준으로 시대가 변해도 공직자가 꼭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 덕목이다. 다만,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신언서판의 순서를 ‘판언서신(判言書身)’으로 바꾸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첫째, 판(判)이란 사람의 문리(文理), 즉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뜻한다.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말한다. 이를 제일 먼저 거론하는 이유는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올바른 철학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계엄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누구는 내란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누구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누구는 탄핵을 적극 찬성하는 반면, 누구는 탄핵은 무조건 반대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대통령을 체포해서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누구는 대통령을 체포해서 처벌하는 것이 오히려 내란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생각은 다른 수 있지만,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올바르게 판단하는 역량이 필요한 시대다. 국가를 경영하는 근본 철학이 없는 권력은 자칫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둘째, 언(言)은 언변을 뜻하며, 간결하고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이다. 현대적으로 언(言)을 해석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정평이 나있지만, 작금에는 너무나 많은 거짓말이 진실인양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화려한 언어의 구사보다는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따뜻한 언어가 필요하다. 편 가르기를 하고, 자신만의 아집을 주장하기 보다는 경청과 긍정의 언어로 국민을 설득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대통령과 정치인, 변호사, 정치평론가들의 언어는 수준이하다. 일부 유튜버와 선동가들은 극단적인 언어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일부지만 대통령을 변호하는 법률전문가들의 선동적인 언어를 들으면 과연 변호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말로 세상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말을 들으며 변호사 시험에 법학과목 이외에 인간으로서의 기본 윤리나 예의범절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법 논리에 맞지 않는 궤변을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떠들어대는 그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다.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는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를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 단어 사용도 신중하게 해야 하며, '아무 말 대잔치'를 멋있는 언변으로 포장해서도 안 된다.
셋째, 서(書)는 글씨(필적)를 의미하며, 예로부터 필적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준다고 해서매우 중요시했다. 다만, 컴퓨터 자판으로 입력하는 것이 대부분인 지금, 글씨나 필적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서(書)는 서책으로 바꾸어서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쓰는 덕목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을 비롯해 장관, 국회의원, 판사, 검사, 변호사를 가릴 것 없이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은 좋은 책에서 지혜를 얻고, 좋은 글을 쓰면서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해야 한다.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자신의 철학도 없는 위정자들이 어찌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자신만의 이상한 세계에 빠져 엉뚱한 방향으로 나라를 몰고 가는 것이리라.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국민들을 편 가르는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내 편은 좋은 국민이고, 내 편이 아니면 나쁜 국민도 아니다. 모든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위정자가 해야 할 의무이니 자신만을 변명하는 이상한 글(書)은 쓰지는 말아야 한다.
넷째, 신(身)이란 풍채와 용모를 의미하며, 잘 생겼다 또는 예쁘다는 겉모습보다는 어른으로서의 품격을 갖춘 모습이 될 것이다. 나이 마흔이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얼굴에는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손동작 하나 하나가 모두 삶의 기록이다. 외모가 그 사람의 내면을 다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품격을 갖춘 용모는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준다. 요즘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품격을 찾기는 쉽지 않다. TV 화면으로 매일 그 모습을 봐야 하는 국민들의 괴로움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세상이 어수선하고 나라의 앞날이 어두운 이 시대, ‘판언서신(判言書身)’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위정자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위정자가 대우받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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