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약한 재료로 지어진 기도의 공간이 있다. 1995년 일본 고베 나가타에는 종이로 지어진 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10×15㎡ 면적에 길이 5m, 지름 33㎝ 지관통(종이튜브)을 기둥으로 사용해 타원형 공간을 조성했다.
이 공간은 80석을 배치할 수 있는 규모로, 타원의 면에는 기둥 간격을 넓게 둬 외부와의 연계성을 확보했다. 직사각형 땅을 둘러싼 폴리카보네이트 벽체와 타원형 공간 사이에는 복도가 형성돼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 이 공간을 통과하는 경험을 유발해 이 간단한 성당에서도 종교적 시퀀스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천막으로 조성된 지붕은 본당 내부에 은은한 빛을 들이며 신성한 분위기를 더했다.
또 다른 성당은 2013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지어졌다. 고베 성당이 지관통을 기둥으로 활용했다면 이곳에서는 지관통 96개를 천장에 사용해 전체 공간이 A자형 구조를 갖출 수 있게 했다. 외관에서 삼각형의 조형성이 돋보이는 이 성당은 컨테이너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살짝 틈을 둬 설치된 지관통 사이로는 외부 빛이 스며들어 오고, 성당 전면의 삼각형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해 고베 성당보다는 전형적인 성당이 갖고 있는 연출을 더했다. 단층이지만 높이가 24m여서 성당이라는 공간의 웅장함까지 지닌 이곳은 약 700명을 수용 가능한 임시 성당으로 지어졌다.
건축물은 무엇보다 튼튼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므로 약한 재료인 종이가 구조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의문을 자아낸다. 그러나 고베 성당은 2008년 지진 피해를 본 대만으로 이전돼 사용성을 연장했고, 크라이스트처치 성당은 50년간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두 성당의 공통점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장소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 성당은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다카토리 성당을, 두 번째 성당은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훼손된 성당을 대신하기 위해 건립됐다. 재난 현장에는 빠른 수급이 가능하고 값이 저렴하며 해체·조립 등 사용성과 가공성이 좋고 튼튼한 재료가 필요하다. 이 모두를 충족하는 것이 종이, 정확히는 이들 성당에 사용된 지관통이었다.
두 성당의 건축가인 반 시게루는 이런 종이 건축, 즉 지관통을 구조재로 사용하는 건물을 꾸준히 지어왔다. 그는 종이가 실제 건축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이것이 가장 빛을 발한 곳은 재난 현장이었다. 건축가는 이 성당들 외에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 종이 학교와 아이티 대지진 때 피난민을 위한 주택을 짓는 등 사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본격적인 시작은 1994년 르완다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 200만 명을 위한 임시 거처로 종이집을 제안한 것이었다. 두 성당에서는 종이 외에도 값이 싼 폴리카보네이트, 컨테이너 등을 함께 활용해 재난 상황에 적합하지만 미적 기능을 잃지 않은 건물을 창조했다.
잘 찢어지고 무언가를 지탱하기에 한없이 약해 보이는 종이가 이처럼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단단한 재료로 사용되기까지에는 한 건축가의 사회를 향한 책임감이 있었다. 건축가가 종이를 고를 때도 환경에 대한 책임감 같은 큰 문제의식이 있었을 것 같지만 종이를 선택한 이유는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아까워해 쓰임을 찾는 단순한 마음이 바로 창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지 않아서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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