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요즘 반려견·반려묘의 일상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반려동물의 일상은 아니다. 사람도 VIP가 있듯 반려동물도 VIP(very important pet)가 있다. 이런 ‘VIP’의 일상은 특별하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사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냐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치 아니냐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반려동물은 가족과 친구 그 이상이다.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나 곁을 지키며 반려동물이 보내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펫(pet)을 넘어 팸(family)’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우울증에 빠져드는 ‘펫 로스’ 증후군까지 있을까.
국내에서 이렇게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인구는 1500만 명에 이른다.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부터 뷰티·외식업체, 호텔·백화점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반려동물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이유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쓸 수 있는 스킨케어 제품부터 한 테이블에서 함께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 반려동물과 라운딩할 수 있는 골프장까지 럭셔리 펫 시장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말 못하는 반려동물이 혹여나 불편하고 아플까 봐 전문 수의사가 관리해주는 종합 건강 서비스, 영양제, 맞춤형 식단 등 ‘펫 헬스케어’ 시장도 함께 커지고 있다.
럭셔리의 또 다른 말은 그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가족 같은 중요한 존재에게 좀 더 좋은 걸 선사해주고 싶은 마음이 이 세계를 탄생시켰다. 떠나보자 펫 럭셔리의 세계로.
때깔부터 다른 '패펫'의 세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럭셔리 펫션(펫+패션)’은 셀럽들의 특이한 취향처럼 여겨졌다. 이젠 아니다. 가족, 친구, 연인에게 선물하듯 반려견·묘를 위해 명품을 고르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은 옷. 패딩부터 코트, 스웨터, 반다나, 파자마, 레인코트까지 펫 패션엔 없는 게 없다. 사람이 들고 다니는 명품이 그렇듯, 펫을 위한 명품도 ‘숨은 디테일’에 한 끗 차이가 있다. 에르메스 펫 라인업이 대표적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에르메스 소속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수놓아 제품을 완성한다. 에르메스의 시그니처인 19세기 승마 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소재, 컬러, 모티프를 그대로 활용한다.
그냥 명품 로고만 넣었다고 럭셔리 펫션이 아니다. 반려견이 최대한 편안하게 뛰놀 수 있도록 신축성과 통기성을 극대화한 ‘애슬레저’ 제품도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빈폴액세서리는 미국 프리미엄 펫 브랜드 ‘맥스본’과 손잡고 겨울철 밖에서도 따뜻하게 놀 수 있는 보온 재킷, 방수와 통기성을 갖춘 레인코트 등을 내놨다.
하네스(가슴줄)도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디자인했다. 랄프로렌이 선보인 도그 스웨터는 부드럽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산 캐시미어 소재를 사용해 자극을 최소화했다.
반려견을 위한 이동 캐리어도 수천만원대를 호가한다. ‘직사각형 트렁크’가 원조인 루이비통이 선보인 8000만원짜리 도그하우스 ‘커넬 트렁크’는 사람용 하드사이드 케이스를 새롭게 디자인한 제품이다. 루이비통의 시그니처 문양과 황금색 금속 격자가 돋보이는 집 모양인데, 바닥 세척도 간편하다. 4000만원이 넘는 이동형 ‘도그 트렁크’는 중소형 강아지가 딱 들어갈 만한 사이즈다.
펫 칼라(목줄)도 요즘 뜨는 아이템이다. 색상은 물론 가죽, 재활용 소재 등 소재까지 세세하게 고를 수 있다.
티파니는 특유의 민트 색상을 적용한 칼라 제품을 내놨는데, 티파니의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 블랙핑크 로제가 반려견 행크가 이 칼라를 착용한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반려동물을 위한 럭셔리 뷰티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털이 윤기가 나도록 유지해주는 수분 미스트, 눈물자국을 지우는 세정제, 발바닥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보습 로션, 반려동물의 후각을 자극하지 않는 펫 전용 향수까지…. ‘펫 뷰티’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사람도 군침흘릴 '펫푸드'
양송이수프·스테이크·티라미수, 삼색경단·비빔밥·식혜, 계란찜·생선구이·찹쌀떡두부(모찌리도후), 꽃차·짜장밥·화과자….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요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레스토랑 맘마가 반려견 전용 코스요리로 팔고 있는 메뉴다. 이 레스토랑은 사람이 먹는 음식도 함께 파는 곳이다. 반려견을 위한 음식 종류도 다양하다. 양식부터 한식, 일식, 중식까지 ‘개 취향’에 맞게 준비했다. 가격은 대부분 2만원대다.
펫팸족이 늘어나며 반려동물의 음식도 날로 고급화하고 있다. 과거엔 반려동물에게 사료 위주로 먹였지만 요즘은 맞춤형 식단, 반려동물 전용 레스토랑, 영양제 등 사람과 거의 비슷하게 먹인다. 우선 사료부터 많이 달라졌다. 사료 제조사 바프독은 반려견 1 대 1 맞춤형 생식을 판매한다. 생식은 조리 과정 중 불을 쓰지 않은 음식을 뜻한다. 바프독의 생식은 반려견이 기본적으로 육식을 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육류 및 내장류, 곡물, 채소 등을 혼합해 사료를 제작한다. 원재료를 적절히 배합해 반려견이 단백질과 지방을 신선한 상태에서 섭취할 수 있도록 했다.
반려동물의 정보를 입력하면 맞춤형 레시피로 생식을 제작하는 것도 특징이다. 모든 레시피에는 유기농,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료만 사용한다. 반려동물에 맞게 한 끼 정량 분량이다. 끼니별로 나눠서 쉽게 줄 수 있도록 포장했다. 또 다른 사료 제조사 봄봄은 반려견과 반려묘를 위한 생식과 화식을 모두 판매한다. 화식은 조리 과정에서 불을 쓴 음식이다. 화식은 콜드체인 시스템을 통해 신선한 상태로 유지한 고기를 수비드 방식으로 제조했다. 수비드는 고기를 정확히 계산된 온도의 물로 가열하는 조리 방법으로, 수분이 보존되고 식감이 부드러워지는 게 특징이다. 닭, 오리, 칠면조, 돼지, 소, 양, 캥거루 등 다양한 고기 중 선택할 수 있다. 반려동물의 성장 과정에 따라 식단을 중간중간 수정해준다.
반려동물을 위한 레스토랑도 다양해지고 있다. 교원그룹이 운영하는 호텔 키녹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반려견 전용 메뉴 멍푸치노, 멍파르페, 멍치킨, 멍피자를 판매하고 있다. 카프치노, 파르페, 치킨, 피자에 개를 뜻하는 ‘멍’이란 단어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다. 반려동물과 함께 묵을 수 있는 호텔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멍치킨은 닭고기와 황태로, 멍피자는 고구마 반죽으로 만들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패티드에서는 반려견 전용 요리와 수제 간식을 판매하고 있다. 가게 내부에 반려견 전용 의자와 테이블, 식기 등이 있고, 옥상엔 반려견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이 가게에선 알리오올리오부터 칠면조 소시지 미트볼, 캥거루 고기로 만든 부르기뇽 등 이색 메뉴도 판매 중이다.
반려동물을 위한 영양제도 다양하다. 반려동물 영양제 브랜드 엣츠는 길어진 반려동물의 수명을 고려해 유산균, 관절 근육 영양제 등을 판매한다. 국내 제약사에서도 반려동물 영양제 브랜드를 내놨다. 종근당바이오의 ‘라비벳’, 동아제약의 ‘벳플’, 광동제약의 ‘견옥고 본’ 등이 대표적이다.
Very Important Pet…펫팸족을 위한 'VIP' 서비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기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모이면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배 아파가며 낳진 않았지만 기르는 정성만큼은 자식 못지않게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친밀하게 여기는 사람이 빠르게 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쇼핑과 외식, 휴가, 헬스케어까지 다양한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수백만원짜리 상품까지 나올 정도다. 가족을 위해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 따위는 맘속에 자리 잡을 틈이 없다. 반려동물과 함께 멋진 추억을 쌓을 계획이라면 예약이 차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스키장에도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있다. 강원 홍천군에 있는 소노펫클럽앤리조트 비발디파크는 중·대형견은 물론 반려묘도 동반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오일 미스트, 전용 물티슈 등 어메니티를 제공한다. 스키를 타러 갈 때 반려동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위탁 서비스(펫보딩)도 상품에 따라 무료로 제공된다. 강원 평창군에 있는 휘닉스 평창 리조트도 반려견·반려묘 동반 객실이 있다. 오는 3월까지 운영되는 패키지 상품을 구매하면 펫 동반 곤돌라 탑승, 와인 제공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반려견과 함께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골프장도 늘어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롯데스카이힐제주CC는 팀당 반려견 한 마리를 동반해 라운딩할 수 있다. 반려견 그린피는 10만원이다. 클럽하우스 식사 및 로커 이용 시 프런트에서 반려견 케어를 돕는다. 충북 청주에 자리한 이븐데일CC와 인천 클럽72 듄스도 반려견 동반 라운드 이벤트를 하고 있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놀로스퀘어는 이런 보호자를 위한 반려견 건강 관리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중 인기 있는 ‘비만 클리닉’은 전문 수의사가 매주 건강을 체크해 물놀이로 근력량을 늘리고 심폐지구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반려견을 위한 일종의 퍼스널트레이닝(PT)인 셈이다. 1개월 체험 프로그램은 약 40만원이다.
놀로스퀘어는 7층짜리 건물 전체가 반려동물 건강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됐다. 지하 1~2층은 반려견 수영시설과 피트니스 시설, 2~3층은 암센터·의료센터로 구성됐다. 4층은 반려묘를 위한 전용 서비스 공간, 5층은 반려견 행동 교육 시설, 6~7층은 한방재활센터로 구성됐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강아지 유치원 바우라움은 연예인도 믿고 맡기는 곳으로 애견인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이곳은 유치원뿐 아니라 호텔, 스파, 미용실, 동물병원까지 운영한다. 유치원에서는 기본적인 매너 교육뿐 아니라 산책 예절, 행동 교육 등 수업이 커리큘럼에 맞춰 이뤄진다. 유치원 이용 가격은 출석 횟수에 따라 월 20만원 선에서 90만원 선(소형견 기준)까지 다양하다.
아울렛은 백화점보다 반려동물에 더욱 친화적인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신세계 스타필드는 코엑스몰을 제외한 대부분 매장에 전용 휴식·놀이공간을 제공한다. 스타필드 하남·안성·수원은 펫 유모차 대여 서비스도 운영한다.
롯데프리미엄아울렛 파주·의왕·기흥점 등은 반려동물과 식사가 가능한 ‘펫그라운드’를 마련했다. 다른 손님과 섞이지 않고 마음 놓고 반려동물과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경기 남양주)은 1322㎡ 규모 대형 펫파크를 운영 중이다.
"펫·반려인·非반려인…모두 즐길 공간 조성, 리브투게더 꿈꿔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을 걷다 보면 블랙핑크 제니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린 탬버린즈 매장 건너편에 특별한 건물이 있다. 이름은 ‘코코스퀘어 신사 플래그십스토어’. 이곳 1~2층은 국내에 몇 곳 없는 ‘합법적’ 반려견 동반 음식점이다.
이곳에선 강아지가 전용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그 옆에서 사람들이 파스타와 와인을 즐긴다. 다른 층에 있는 수영장과 마사지·미용숍에서 반려견이 관리받거나 쉬는 동안 견주는 루프톱에서 모임을 즐길 수 있다. 재계 인사부터 연예인까지 100만~1억원에 이르는 코코스퀘어 멤버십에 가입한 사람은 1만 명이 넘는다.
반려인에게 천국과 같은 이곳을 만든 것은 하성동 코코스퀘어 대표(사진)다. 이력이 간단치 않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명품 총괄, 이지스·PS자산운용 임원…. 펫 사업과 단번에 연결되진 않는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그러자 예상외의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펫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그 순간, 오직 펫만을 위한 사업에 갇히게 되거든요. 알로가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거듭난 것처럼 코코스퀘어는 반려인을 위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될 겁니다.”
그의 말처럼 코코스퀘어 매장 그 어디에서도 ‘펫’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내놓은 자체브랜드(PB) 제품도 사람용과 반려견·묘용을 구분 짓지 않는다.
신사점은 코코스퀘어의 첫 매장이 아니다. 시작은 2020년 경기 남양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이었다. “현대에서 727㎡ 규모 공간을 선뜻 내줬어요. 식당, 유치원, 호텔, 수영장 등을 조성하고 반려견이 프로그램을 즐기는 동안 반려인이 편하게 아울렛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하자 친정인 롯데와 신세계에서도 러브콜이 왔죠.” 코코스퀘어는 의왕·부산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스타필드 수원 등에 입점했다.
요즘엔 해외 호텔·리조트, 고급 주거단지에서도 하 대표에게 연락이 온다. 올 상반기 글로벌 커피 브랜드와 손잡고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매장을 열 계획이다. 하 대표는 “반려인부터 반려동물, 비(非)반려인까지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 ‘리브 투게더(Live Together)’ 공간과 제품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이선아/라현진/배태웅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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