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헌법재판소의 공정성 논란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국민의힘은 특히 특정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재판관들을 겨냥해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편향성을 부각하고 있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맡은 8인의 헌법재판관 중 판사들의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나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몸을 담았던 재판관은 문형배 헌재 소장 대행, 이미선·정계선 재판관 등 3인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우리법재판소'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면서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도 CBS 라디오에서 "헌재에 지나치게 특정 성향인 분들이 많이 가 있어서 대통령에 대해 심판했을 경우 그 결과에 국민이나 국민의힘이 수긍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법연구회' 회원 판사들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법조 고위직에 대거 진출했다. 특히 우리법·국제법연구회 회장을 모두 지낸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재임하는 6년 동안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등 주요 보직에 이들이 다수 임명됐다. 그 결과 한때 대법관 14명 중 7명이, 헌재 재판관 9명 중 5명이 이들 단체 출신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1989년에 출범해 2018년 해체된 '우리법연구회'에 몸을 담았던 이들은 약 15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같은 기간 판사 재직자가 5000여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판사의 약 3% 수준이다. 인권법연구회 회원까지 포함하면 전체 판사의 10% 수준인데, 주요 보직의 절반가량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이 단체 출신 국회의원들도 다수 포진하고 있다. 우리법 출신 의원으로, 국회 탄핵소추단에 들어간 박범계·최기상 의원이 대표적이다. 우리법과 인권법에서 민주당으로 영입된 인사는 이들 외에도 이수진 의원, 이탄희 전 의원 등이 있다.
논란이 커지는 것은 이들이 최근 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국면마다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우선 '내란죄 수사권' 논란에도 윤 대통령 체포와 구속을 밀어붙였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인권법' 출신이다. 공수처가 신청한 체포 영장과 구속 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의 영장 전담 이순형 판사도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민주당이 12·3 계엄 사태 이후 추천한 두 명의 헌법재판관(정계선·마은혁) 후보자 역시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이 단체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헌재에 합류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임명을 보류한 마은혁 후보자까지 재판관이 되면, 헌재와 '우리법연구회'와의 관련성은 66%(9명 중 6명)로 올라가게 된다.
헌법재판관 중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선 문형배 헌재 소장 대행은 과거 남긴 글이 재조명되며 도마 위에 올랐다.
문 대행은 자신이 '가장 왼쪽'이라며 정치 성향을 밝히거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여러 차례 SNS를 통해 대화를 나눈 사실이 알려지며 여권 지지자들의 손가락질 대상이 되고 있다. 문 대행과 이 대표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7차례 SNS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상에서는 문 대행을 '극좌 판사'로 점찍고, 그가 과거 남긴 글을 패러디하며 비판하는 글도 쏟아지고 있다.
헌법재판소 게시판에는 "우리법연구회는 뭘 하는 조직인지, 목적과 명단을 공개하라", "우리법연구회 소속 헌법재판관은 자진 사퇴하라", "우리법연구회는 하나회보다 심한 것 같다", "좌편향 정치 이념을 가진 자들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탄핵 심판을 할 수 있는가?"라는 등의 비판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정치권에서는 헌법재판관 정치 성향을 둘러싼 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헌법재판소가 극성 지지자들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우리법연구회'라는 좋은 먹이까지 있는 것"이라며 "정치 편향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통령 탄핵에 대해 판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 성향' 논란에 "재판관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 짓고 탄핵 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정치성향 논란을 일으킨 문 대행 과거 블로그 글에 대해 "특정 부분만 발췌한 기사를 보기보다 원문 전체를 읽어보시고 맥락에 따라 판단하면 될 것 같다"며 "SNS 창에 댓글로 이뤄진 대화도 문제를 제기하는데 기본적으로 대통령 탄핵 심판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는지와 그 위반의 정도가 중대한 지 여부"라며 "이에 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