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심해 가스전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1차 시추 결과 발표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경제성 있는 가스 포화도는 아니었으나, 다른 유망 구조에서는 석유·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첫 시추는 동해 울릉분지에 '(가치가 없는) 이산화탄소만 확인됐다'는 호주 에너지 기업 우드사이드의 탐사 결론이 배제된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다"며 추가 시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국민 대왕고래 사기극"이라며 추가 시추를 반대하는 정치권 일각의 공세를 비판한 것이다.
다만 가스 포화도가 기대보다 낮다는 것은 석유·가스가 충분히 이동해오지 않았거나 인근의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6월 정부의 대왕고래 프로젝트 발표 당시 불거진 비판론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다. 해당 가스가 근원암에서 생성돼 '이동'한 게 최종적으로 확인되면 대왕고래는 드라이홀(Dry hole, 경제성이 없는 구조)이 아닌 가스쇼(Gas show, 유망한 가스 징후)로 볼 수 있다.
당시 정부 발표에 앞서 호주 에너지기업 우드사이드가 2022년 해당 지역에서의 유전 탐사를 진행한 뒤 "나온 것은 물과 이산화탄소뿐이라 가망이 없다"며 사업을 철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었다. 우드사이드 시나리오를 근거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왕고래 등의 유망성 평가 용역을 맡긴) 액트지오는 1인 기업"이라며 액트지오 용역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조용채 서울대 에너지자원시스템공학 교수는 "우드사이드 결론이 알려지면서 울릉분지 지하 심부에서 맨틀 지각 경계에서 생기는 대규모 이산화탄소 생성과 이동 있었으며, 탐사 자료에서 보이는 가스 신호가 이산화탄소일 가능성이 있다(쓸모 없는 퇴적층이란 의미)는 우려가 많이 제기됐었다"며 "하지만 1차 시추 결과 석유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산화탄소가 없거나 미미한 정도라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어 "'우드사이드 시나리오'가 배제된 것만으로도 의미있었던 시추인 것"이라며 "이번 결과는 나머지 시추를 이어가야 한다는 근거를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범 부산대 지질환경학 교수는 "동해에서는 이미 동해-1이라는 가스전이 있었고 가스가 한번 나왔다는 것은 이미 그 가스의 원천 물질 자체는 충분히 있다는 게 여러 논문에서 나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첫술에 배부르길 바라는 국내 분위기가 우리나라의 자원 개발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가이아나 유전이나 이스라엘 유전의 경우 5~7km를 굴착해서야 찾아냈다. 특히 가이아나 유전의 경우 원래 글로벌 에너지 기업 셸과 엑슨모빌이 공동 투자했던 곳으로, 셸이 철수한 뒤에도 계속 시추를 하던 엑슨모빌이 셸의 철수 한달 만에 유전을 발견했었다.
7개 유망구조 중 대표적인 유망구조로 거론됐던 대왕고래가 실패로 규정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번 시추 지점에서 가스 포화도가 낮았지만, 대왕고래 전체의 가스 포화도가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만큼 대왕고래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시추가 필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발표에서 "7개 유망구조 중 하나인 대왕고래 시추공은 문을 닫았다"며 나머지 6개 유망구조에 대한 추가 탐사 필요성을 제안했지만, "대왕고래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전문가는 "대왕고래라는 유망 구조는 하나의 작은 구조가 아니라 매우 큰 지질 구조라서 애초부터 한 번의 시추 결과만으로 전체 유망 구조의 가능성을 단정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며 "이번 시추를 통해 가스가 존재했던 흔적이 확인됐지만 이동이 부족했는지, 저류층의 특성은 어떤지 등 중요한 정보를 확보했고 추가 정밀 분석을 통해 대왕고래 내에서 보다 유망한 지점을 선정해 추가 시추를 진행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을 예로 들기도 했다. 태백부터 강화도까지 이어지는 한강 바닥이 하나의 샌드층이라고 단정할 수 없듯이 대왕고래 전체 구조도 하나의 저류층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예를 들어 이번에 시추한 곳을 남한강 유역의 단양 인근으로 비유할 경우 이곳에서 석유 시스템 존재가 확인이 됐다고 한다면 같은 퇴적 환경에서 형성된 양평 유역에는 석유·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번 탐사 결과를 기반으로 대왕고래 내부에서 추가 탐사를 할지 혹은 다른 6개 유망 구조로 탐사 방향을 돌릴지를 보다 정밀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또한 유망 구조의 실제 분포를 반영해 광구(국가가 석유·가스 탐사 및 개발 권한을 기업에 부여하는 행정 구획)를 보다 합리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현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석유 시스템이 있었다는 건 긍정적"이라며 "아직 초기라 예단하기엔 이르고 추가 시추로 분석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유전 탐사는 꾸준히 수십 년 해오던 일인데 이번에 정치적으로 공론화된 게 아쉽다"고 했다.
김리안/하지은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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