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성희롱 금지 관련 제도를 비롯해 현행 노동법은 근로관계에 대한 상당한 후견적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입법 경향과 더불어, 노동위원회·노동청·법원 등 노동관계 분쟁을 다루는 기관들의 후견적 개입 정도가 점점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괴롭힘·성희롱 금지 법령은 기존의 근로계약과는 다른 요소를 규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근로자의 처우를 직접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 간 발생한 문제에 대해 사용자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괴롭힘·성희롱은 과거에도 직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징계 대상이 될 수 있었으나, 관련 법령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정되면서 사용자의 조사 의무와 피해 근로자 보호 조치 의무 등이 명확히 규정됐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사용자의 보호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괴롭힘·성희롱 문제에 있어 사용자의 인사권 및 징계권에 일정한 작위 의무가 부여됐으며, 이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구체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괴롭힘·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입법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입법의 강도와 법 집행 기관의 개입 수준에는 적절한 한계가 필요하다. 근로관계는 본질적으로 민사적 계약 관계이며, 사용자에게는 고유한 인사 재량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위 행위를 저지른 직원이라도 업무상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 사용자는 해고가 아닌 다른 징계를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괴롭힘·성희롱 피해 근로자 보호 조치도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사용자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피해 근로자가 가해자의 즉각적인 해고를 요구하거나 과도한 수준의 유급휴가를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술자리에서 상사가 술에 취해 가벼운 신체 접촉을 했다는 이유로 가해자 해고와 6개월 유급휴가를 요구하는 식이다.
이처럼 피해 근로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노동청 진정, 노동위원회 시정 신청, 법원 소송 등의 절차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사용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인사 재량권이 부정당할 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옹호한 것처럼 비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노동위원회 등 관계 기관도 사용자의 인사 재량권보다는 근로자에 대한 ‘최대한의’ 보호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가 이미 충분한 조처를 했음에도 관계 기관이 근로자의 요구를 전부 또는 일정 부분 수용하려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에 대한 최대한의 보호는 곧 사용자의 금전적 부담으로 이어지는데, 기관들이 사용자의 조치가 사회 통념상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는지를 평가하기보다 ‘그것만이 최선의 조치였는가’를 따지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따라서 노동위원회나 법원 등 관계 기관은 원칙으로 돌아가 근로자에 대한 ‘최대 보호’가 아니라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한계’ 내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hr > 김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46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8기) 합격 후 15여년간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10년간 법무법인(유) 광장 노동팀에서 근무 후 법무법인(유) 율촌 노동팀에 지난 2019년 합류하였다. 징계/해고/임금/불법파견/근로자성 등에 관한 전통적인 노동 송무 및 자문 업무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요 M&A Deal의 HR 부문에도 다수 관여하였고, 외국기업의 자문·송무도 주요 업무로서 수행하여 왔다. 또한 성희롱/괴롭힘 사건, 노조 및 쟁의행위 대응 업무, 프로젝트 업무(유연근무제 도입, 불법파견 점검, PMI 등), HR 측면의 개인정보 이슈 등에도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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