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 현지 매체를 통해 방산업 진출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가동을 중단한 독일 내 공장 2곳을 활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폭스바겐은 상용차 자회사 만트럭버스와 독일 방산기업 라인메탈과의 합작 형태로 방산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기업 중에선 기아가 군용차를 생산 중이다.
폭스바겐의 움직임은 유럽연합(EU)의 군비 증강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EU는 10일 8000억유로(약 1260조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EU가 2023년 지출한 국방비(약 450조원)의 세 배에 달한다. 지난해 20%인 유럽산 무기 구입 비중을 2035년까지 60%로 높이려는 계획도 세웠다.
그동안 유럽에선 오랜 기간 전쟁이 없어 현지 방산업체의 생산 능력이 갈수록 약화했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유럽의 무기 수요가 커졌고, 한국 기업은 그 틈새를 비집고 폴란드 루마니아 등에서 대규모 수주를 잇달아 따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산 강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우선주의’ 정서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각각 2023년과 지난 1월 한국의 K2 전차 대신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를 구매한 게 직접적인 사례다. 레오파르트 전차를 통해 독일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데다 조립을 현지에서 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효과도 생긴다. 독일 라인메탈은 자동차 부품 생산공장을 방산공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한국 방산업체의 강점인 생산 속도를 뒤쫓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경기 둔화로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들자 폭스바겐이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선 측면도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한국 방산회사는 유럽 각국에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한다는 조건으로 수주전에 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너진 유럽 방산 생태계가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수출 확대를 위해 우리도 금융 정책 등 지원을 늘려야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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