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5세 이하 K팝 신동 발굴 세대교체 오디션'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MBN '언더피프틴'은 최근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홍보 영상에는 앳된 참가자들이 진한 메이크업을 받거나 배꼽티를 입고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겼다. 격렬한 춤을 추는 참가자들의 이름 옆에는 '15', '11', '8' 등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들의 나이였다.
프로그램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8세부터 15세까지 다양한 국적의 총 59명이 출연한다.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글로벌 최초', '만 15세 이하 K팝 신동 발굴 프로젝트', '신인류 알파 세대들의 치열한 데뷔 경쟁' 등의 문구를 내걸고 홍보 중이다.
보도자료로도 K팝 해외 매출이 1조원에 달한다면서 '최연소' 프로젝트임을 거듭 강조했다. '불타는 트롯맨'·'한일가왕전'·'현역가왕'·'한일톱텐쇼' 등을 제작한 서혜진 대표가 이끄는 크레아 스튜디오가 제작한다면서 '오디션 명가'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풍당당한 제작진과 달리 K팝 팬들의 분위기는 싸늘한 상황이다. 미성년자 출연진들의 나이를 '15세 이하'로 제한하고 걸그룹 데뷔 경쟁을 예고한 프로그램의 목적이 대체 무엇이냐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특히 해외에서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해외 K팝 팬들은 X(구 트위터)에 "15세 이하의 어린이를 성적 대상화 하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카메라 앞에 세우는 건 미친 짓", "가장 어린 소녀가 2016년생이더라", "이 아기들을 모집하는 사람들을 가두라" 등의 글을 게시하며 분노하고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외국은 나이에 대한 접근이 이분법적이다. 만 16세를 기준으로 그 이하는 온전히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로 본다"면서 "이 멤버들로 합창단을 꾸린다면 칭찬받겠지만, K팝 그룹은 다르다. 경쟁 과정을 고스란히 노출하니 눈치 게임이 될 수밖에 없고, 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수익화 활동에 돌입할 테니 결국 성적 상품화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여전히 K팝을 롤리타 콘셉트와 연결해서 보는 시선들이 있다"면서 "막연하게 가장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걸그룹을 선보인다는 게 프로그램의 취지라면 공감을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성인 출연자들도 경연을 마친 후 체력적·심리적 부담을 크게 호소한다. 시청률과 연계된 탓에 자극적인 경쟁과 편집의 희생양이 됐다며 속상함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에 제작과 연출 모든 면에서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프로그램 측은 '치열한 데뷔 경쟁'을 예고했는데,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는 경쟁 과정을 대중에 공개하고 평가받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가혹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로 트레이닝을 거치는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르게 날것의 실력이 방송을 통해 보여지고 이후 데뷔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제작진의 시선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차별적인 경쟁 구도를 만들면 그에 따른 비판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들과 접촉하는 심사위원 라인업도 철저한 검증을 통해 꾸려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서혜진 대표는 '불타는 트롯맨' 제작 당시 '학교 폭력' 의혹이 일었던 가수 황영웅을 결승 1차전에 참가시켜 비난받았다. 이러한 관대함은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촌철살인 평가를 날리는 일반적인 오디션과 달리 미성년자 참가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며 교육적인 면모까지 갖춘 심사위원들이 참여해야 그나마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요 관계자는 "싱어송라이터 위주의 팝 시장에서는 어린 친구들을 연습생으로 캐스팅한 뒤 하나의 팀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육성하는 K팝 시스템 자체를 독특하고 낯선 것으로 인식한다. 하물며 어린 미성년자만을 발굴하고 경쟁 과정을 방송으로 내보낸다니 더욱 거부감이 크고 지나친 상품화로 느끼는 것"이라면서 "프로그램의 콘셉트와 취지를 명확히 밝히고, 서바이벌 과정에서 출연자 보호를 위해 어떤 내부적 지침을 마련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