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고 바람이 거세질수록,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 마포대교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자 ‘생명의 전화’가 가장 자주 울리는 다리다.
"지금 힘드신가요? 들어줄게요, 당신의 이야기를..."
17일 서울 마포대교 한가운데, 'SOS 생명의전화' 옆에 적힌 문구다. 기자는 이날 직접 마포대교를 걸으며 이 다리가 극단적 선택의 장소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를 체감했다.
여의나루역에서 도보 7분 거리,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주요 다리 중 하나인 마포대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치열한 느낌이었다. 여의도의 빌딩 숲과 홍대·합정·마포의 화려한 모습, 시야를 빽빽하게 채운 아파트들은 서울의 빠른 속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다리 위에서 곧 고독으로 변했다.
신장 161cm의 기자가 보통의 속도로 다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걸은 시간은 약 22분. 그 길 위에 생명의 전화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첫 번째 전화는 다리 초입에서 7분 30초 거리, 두 번째 전화는 그로부터 15분 뒤에 나타났다.
최근 5년(2020년~2024년)간 누적 상담 건수도 577건(26.4%)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119 구조대의 출동 횟수도 가장 높다. 5년간 189건(24.7%)의 구조 출동이 이루어졌다.
이 전화기는 지자체의 지원 없이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기금으로만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SOS 생명의전화는 한강 다리 전체에 총 75대가 설치돼 있으며, 다리의 양쪽 각각 2대씩 평균 4대가 배치돼 있다.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은 모두 상담 자격증을 보유한 자원봉사자들로,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지속해서 위기 상황을 접하기 때문에 그들 또한 우울감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내부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한강 위라는 특성상 SOS 생명의 전화는 기상 변화에 따른 점검이 필수적이다. 강한 바람이나 태풍이 불 때는 반드시 고장 여부를 확인하고 한 달에 한 번씩 기기를 점검하고 닦는 작업이 진행된다.
SOS 생명의 전화가 초록색과 흰색으로 제작된 이유도 있다. 이는 강물과 대비되는 색상으로,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도록 설계된 것이다.
과거 생명의 전화에서는 기계음이 나왔으나 최근에는 배우 신애라가 직접 녹음한 음성이 사용되고 있다. 그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재능기부로 목소리를 제공했으며 자살 예방 교육도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명보험사회재단 관계자는 "SOS생명의 전화는 단순한 자살방지 시설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싸 안는 역할을 한다"며 "힘들 때 상담을 통해 우울한 마음을 해소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번거로운 절차 없이 바로 상담받을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 마음이 따뜻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서 ‘마포대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 상단에 '마포대교 투신'이 등장할 정도로,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마포대교는 여의나루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주요 다리 중 하나로, 보행자 통행이 활발한 곳이다.
또한 여의도 금융가, 홍대·합정·마포 등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이 많은 지역과 가까워, 자살 시도 연령대인 20~30대의 접근성이 좋은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2012년 '생명의 다리' 캠페인을 통해 다리 곳곳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등의 희망 메시지를 새겼다.
그러나 이 캠페인은 역설적으로 마포대교를 ‘자살 다리’로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고,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이 몰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서울시는 2021년, 7년 만에 해당 문구를 전면 삭제했다.
서울시는 2016년 기존 1.5m 높이의 난간을 2.5m로 높이고, 회전식 롤러를 추가했다. 난간을 밟고 올라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다.
2021년에는 난간을 보완한 '지능형 안전 펜스'를 설치했다. 이 펜스는 철사가 끊어지거나 10cm 이상 벌어지면 119 구조대에 자동 연결되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강 다리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인원은 2019년 169명에서 2023년 293명으로 늘었으며, 2024년 1월부터 9월까지도 273명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러나 구조 시스템이 정교해지면서 실제 사망자는 감소하고 있다. 2019년 3명이었던 사망자는 2022년과 2023년 0명으로 줄었으며, 2024년에는 1명이었다.
서울시는 앞으로 한강 다리에 자살 예방시설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기존 시설이 효과를 보인다는 판단에서다. 안전난간을 높이거나 회전식 난간을 추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용역 결과는 오는 10월 5일 나올 예정이다
마포구 용강지구대 관계자는 "의심 신고는 종종 들어오는데, 막상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는 제 기억엔 없다"며 "많은 사람이 다리 위에서 한 번 더 고민할 기회를 얻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난간을 높이고, 회전식 롤러를 더 많이 설치하는 등의 물리적 조치는 순간적으로 투신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사람의 의지를 꺾지는 못한다"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이들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인해 벼랑 끝에 몰린 상태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심리 상담 서비스와 제도적 지원을 확대해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단순히 물리적 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 일어나지 않을 만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특히 정신질환, 사회경제적 위기 등 자살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백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자살 도구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는 것은 꼭 필요하다"며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이후 연속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치명적인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성을 줄이는 조치와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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