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의 수업 복귀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강도 높은 비판 성명서를 냈다. 교수들은 복귀를 시도하는 의대생들을 비난하는 전공의의 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들에게 책임감 있는 자세와 성찰을 촉구했다.
하은진 오주환 한세원 강희경 서울대의대·병원 교수는 17일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일부 전공의들이 보이는 태도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메디스태프(의료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의료 관련 기사 댓글, 일부 의료계 인사들의 글에는 환자에 대한 책임이나 동료에 대한 존중, 전문가로서의 품격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아플 때, 내 가족을 이들에게 맡겨도 될까 두려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특히 의료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데만 치중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교수들은 “2000명 의대 정원 증가는 해결책이 아니라는 오류를 지적하며 용기를 보여줬다"면서도 "하지만 시스템 개선을 위한 설득력 있는 대안이나 실질적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탕핑(?平·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과 무책임한 반대만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구체적인 행동과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했다.
휴학과 사직을 스스로 선택한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피해자를 자처하는 태도도 질타했다. 교수들은 "진짜 피해자는 지난 1년 동안 외면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련 환경이 가혹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의료 기술과 전문성을 익히는 과정이 단순한 착취로 매도되어선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교수들은 "전공의 과정이 끝나고 전문의가 된 후에는 대다수가 고액 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사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의료 현장을 지키는 동료 의료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교수들은 “현장의 동료들을 조롱하는 것은 동료애와 리더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 등 의사 외 보건의료인력을 비하하는 발언과 태도에 대해서는 "의사만이 의료를 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로 이들을 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며 "의사 면허가 의료 행위의 숙련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성명서 말미에는 의사로서의 책임과 선택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교수들은 “의료계 개혁을 이끌어갈 것인지, 아니면 훼방꾼으로 낙인찍혀 의사 면허의 독점권을 잃고 도태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며 "이 잃어버린 신뢰는 더 한 규제, 소송, 그리고 더 가혹한 환경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대 정원 동결을 주장해온 의료계 단체 중 한 곳인 원로 석학단체 대한민국의학한림원도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의대생들의 3월 내 복귀를 3058명 유지의 전제 조건으로 삼은 점을 규탄하면서도 "(3058명 유지는) 지난 1년 넘게 의료 대란의 주요 원인이 된 무리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정부 스스로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7일 학생들이 이달까지 복귀할 경우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각 대학은 복귀 마감 시한을 설정하며 학생들을 독려하고 있다.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학교병원 하은진(신경외과, 중환자의학과), 오주환(국제보건정책), 한세원(혈액종양내과), 강희경(소아청소년과) 박단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이 올린 ‘스승의 위선’(7일), ‘어른의 편협’(10일)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일 국회 토론회도 지켜보았습니다. 지난 1년 참 많은 일이 있었지요. 그 소회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더이상 침묵하는 다수에 숨어 동조자가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생각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이 사태 초기, 우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용기 낸 제자, 후배들이 대단해 보였고, 후방에서라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의료 시스템이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교수들은 중간착취자다”, “정부의 부역자다”, “편협하고 위선적이다”라는 말들이었습니다. 자신있게 부인할 수 없던 우리는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지속되면서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실망하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메디스태프, 의료 관련 기사 댓글, 박단의 페이스북 글들, 그 안에 가득한 환자에 대한 책임도, 동료에 대한 존중도, 전문가로서의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넘처납니다. 정말 내가 알던 제자, 후배들이 맞는가, 이들 중 우리의 제자, 후배가 있을까 두려움을 느낍니다.
조금은 겸손하면 좋으련만, 의사 면허 하나로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는 모습도 오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글들을 읽다 보면,“내가 아플 때, 내 가족이 이들에게 치료받게 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2,000명 의대 정원 증가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오류를 지적하며, 용기와 현명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로드맵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1년을 보냈습니다. 오직 탕핑(?平)과 대안 없는 반대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부를 반대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대한민국 의료를 개선하는 것입니까? 현재의 투쟁 방식과 목표는, 정의롭지도 않고, 사회를 설득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이제는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투쟁 방식에 계속 동조할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글을 씁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1. 진짜 피해자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직과 휴학은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 손해를 보았을지언정, 진정한 피해자는 아닙니다. 진짜 피해자는 누구입니까? 지난 1년 동안 외면당하고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 아닌가요? 그들의 가족들 아닌가요?
2. 착취인가,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인가?
여러분이 “착취당했다”고 말하는 3~5년의 수련 과정은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은 평생 사용할 의료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 전문성을 쌓으며, 선배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습니다. 그 몇 년을 투자하고 전문의가 되는 것입니다.
수련 환경이 가혹하고, 내용적으로 부족한 점,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단순한 노동 시간이 아님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난 국회 토론회에서 여러분이 요구한 것은 오직 노동 시간과 월급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전문가로서 수련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교수들은 전공의 시절거의 매일을 병원에 머무르며 환자를 돌보고, 배우며 익혔고, 성장했습니다. 140-150시간씩 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과정이 지금의 한국 의료 수준을 만든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이 ‘착취’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전공의 과정이 힘들다고 해서, 전문의가 된 후에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대다수는 고액 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진짜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석·박사 과정의 연구자들은 어떻습니까? 수년간 밤낮없이 연구실에서 살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연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산직·서비스직 노동자들은 12시간 넘게 서서 일하면서도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자영업자의 75%는 월수입 100만 원을 벌지 못합니다. 그중 소득이 0인 사람이 100만 명입니다. 그들의 삶이 여러분의 눈에 보이기는 합니까?
“억울하면 의대 오던지”라는 태도는 진심입니까?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경제적 보장을 받는 직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전공의 수련 과정을 ‘착취’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장일까요? 더나아가, 수련 자체를 부정하고 전문가로서의 성장 과정까지 깎아내리는 모습은 결국 전문가의 가치 자체를 훼손하는 일 아닌가요?
전문의, 전문가로서의 소양을 기르는 과정이 고되다고 의미 없다, 안 한다 그리 쉽게 이야기할 거면 대체 왜 개선을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 의사 면허 - 면허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의사 면허가 특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사 면허는 사회가 우리에게 독점적 의료 행위를 할 권한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희소성을 인정받고,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사회가 의료 분야에서 독점적 구조를 용인하면서도 그 부작용을 감수하는 이유는 면허 이면에 공공성을 요구하는 책임을 다해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을 지속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집단으로 낙인찍히게 된다면, 사회는 결국 그 독점적 권한을 필연적으로 다른 직역에게 위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바라는 결과입니까?
4. 전문가 맞나요?
의사 면허가 곧 전문가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존중을 받는 존재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의사의 전문가 정신은 의사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이 충돌할 때, 환자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나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환자와 국민의 불편과 공포를 무기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 1년 동안 초과 사망자가 3,000명에 달할 수 있다는 보고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나요? 한편에서는 초과 사망자가 없다고도 발표한 연구자도 있었지요. 저는 후자의 발표를 보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작년, 당해연도에는 교수들과 병원의 여러 종사자들이 버텨냈기에 초과 사망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암 등 비응급 중증 질환 환자들이 지연된 치료로 인해, 혹은 치료 자체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결과로 인해 시간이 지나 초과 사망으로 나타날 것이란 것을요. 의사라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정말 모른다면 이 이야길 할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입니다. 당신들이 전문가라면, 전문가로서의 양심이 계속해서 다치고 있어야 합니다.
5. 동료애는 어디 있나요?
여러분은 현장을 지키고 있는 동료 의사, 교수들을 비난하며, 오히려 그들의 헌신을 조롱합니다. 100시간이 넘는 업무에 과로로 쓰러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블랙리스트와 비난이죠. 대체 동료애는 어디에 있습니까? 최근에는 함께 버티던 전문의들조차 떠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돌아와도 가르칠 교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또한 여전히 환자들을 지켜야 하는 우리는 간호사, 현장의 보건 의료직들과 다학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환자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의사만이 의료를 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로 이들을 폄하하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솔직해져 봅시다. 응급실에서의 응급 처치, 정맥 주사 잡기 등의 술기를 응급 구조사, 간호사들에게 배우지 않았나요? 의사 면허가 의료 행위의 숙련도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의 리더여야 하는 의사가 팀원들을 비하하다니 정말 리더 자격이 없는, 동료애도 없는 것 아닌가요?
6. 상대가 밉다고 우리의 터전을 파괴할 것인가?
정부가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의료계도 똑같이 굴어야 하는지요? 남수단 내전, 시리아 내전같은 상대에 대한 증오로 인한 극단적 대립은 그 나라를 파괴하였습니다. 결국 모두가 무너진 것이죠. 그런 승리는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금 의료 시스템은 붕괴 중입니다. 그 붕괴에 정부만 책임이 있는지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믿을 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기심에 의료 시스템 붕괴의 원흉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 잃어버린 신뢰는 더 한 규제, 소송, 그리고 더 가혹한 환경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7.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이 저급하게 나오면, 우리는 품격 있게 대응한다.) 미셸 오바마
의 이 말을 우리는 되새겨야 합니다. 정부와는 다르게, 책무를 다하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개혁을 이끌 것인가? 사회와 의료 환경을 개선하면서도, 우리의 근로 환경 역시 지속 가능하게 바꿔갈 것인가? 그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서로 도와가며 주도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낙인찍혀 독점권을 잃고 도태될 것인가? 이제 여러분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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