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이 미국 켄터키 2공장 양산 시점을 무기한 연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 SK온이 19일 닛산과 맺은 15조원 규모 공급 계약은 전기차 캐즘 돌파구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닛산이 내놓을 신차 30종 중 16종을 전기차로 정한 만큼 미국에서 안정적인 매출처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석희 SK온 사장(사진)은 “SK온의 배터리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완성차 회사의 전기차 전환을 돕는 식으로 캐즘을 돌파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닛산과의 배터리 납품 계약 협상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닛산은 도요타, 혼다에 이은 일본 3대 자동차 메이커다. 2010년 세계 첫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출시하는 등 전기차 분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후 전기차 전환이 늦어진 데다 혼다와 추진한 합병마저 무산돼 배터리 공급 협상이 어그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닛산이 실적 부진 돌파구를 전기차에서 찾겠다는 방침을 밀어붙이며 협상에 속도가 붙었다. 닛산은 2028년부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2종, 세단 2종 등 총 4종의 전기차를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닛산은 또 2026년까지 전체 모델의 40%를 전기화하고, 2030년에는 이 비율을 6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SK온이 공급하는 배터리는 닛산의 SUV인 ‘아리야 니스모’에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출시된 전기차 아리야의 고성능 버전이다.
SK온으로선 미국 내 납품처가 늘어난 것도 호재다. SK온은 그동안 미국에선 현대자동차와 포드에만 배터리를 공급했다. 하지만 포드의 전기차 판매량이 둔화해 켄터키 2공장 건설을 중단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과 한국 등지의 공장 가동률도 지난해 43.8%로 떨어졌다.
닛산에 배터리 공급이 시작되면 미국 공장 가동률도 높아진다. SK온은 미국 조지아주에 연산 22GWh(기가와트시) 규모의 공장을 가동 중이다. 또 고객사와 합작법인(JV) 형태로 조지아주, 켄터키주, 테네시주 등지에 신규 공장 4개를 건설하고 있다. 모든 공장이 완공돼 풀가동하면 SK온의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능력은 180GWh 이상으로 늘어난다.
다만 닛산이 포드처럼 전기차 판매에 어려움을 겪으면 SK온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닛산은 지난해 약 79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미 시장에서 부진했던 탓이다.
김우섭/성상훈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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