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벌었다…현대 미술 악동

현대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데이미언 허스트(60)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허스트는 미술계에서 다양한 이슈로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가다.
그중 가장 빈번한 이슈는 바로 그가 작품으로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금액일 것이다.

2020년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발표한 영국 부자 리스트에 따르면 데이미언 허스트의 자산은 약 4992억원으로 추정된다. 살아 있는 영국 작가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이다.

허스트는 작가로서만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름난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 남부 복스홀 중심부에 자리 잡은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는 허스트가 자신의 컬렉션으로 꾸린 공간이다. 허스트는 무명 시절부터 작품 컬렉팅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다른 작가 작품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 맞교환 수집가…‘나를 죽여줘’ 컬렉션

허스트와 작품을 교환하던 이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태동해온 ‘YBAs(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이다. 맞교환으로 시작한 허스트의 컬렉션은 허스트가 작가로 성공하며 점차 방대해졌다. 동시에 YBAs에서 명성 있는 작가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컬렉션은 더 큰 가치를 갖게 됐다. 허스트는 자신의 컬렉션을 ‘더 머더미 컬렉션(The Murderme Collection)’이라고 불렀다. 그는 ‘나를 죽여줘’라는 별난 이름을 붙인 이 컬렉션으로 그는 2006년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갤러리에서, 2013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피나코테카 조반니 에 마렐라 아넬리에서 총 두 번 전시를 열었다.

허스트는 전시회 이후 자신의 컬렉션을 더 적극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그렇게 2015년 컬렉션을 공개할 목적으로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를 개관했다. 빅토리아 시대 때 무대용 배경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로 쓰던 건물에 자리를 잡았고, 영국의 건축가 그룹인 카루소세인트존 건축팀이 참여했다.

갤러리는 총 다섯 개 건물로 이뤄져 있다. 그 가운데 세 개는 빅토리아 시대 스튜디오를 되살린 것이고, 갤러리 양쪽 끝 건물은 새로 지었다. 건물 구조상 갤러리는 복스홀 지역의 철로를 마주 보고 있다. 갤러리는 이를 이용해 철로에서 보이는 외벽에 LED 패널을 설치해 지나가는 열차 승객들에게 갤러리를 적극 홍보하기도 한다. 특히 갤러리의 톱니 모양 지붕과 건물 내부의 나선형 계단이 방문객의 시선을 끈다. 갤러리는 2016년 영국 최고의 신축 건물에 수여하는 RIBA 스털링상을 받았다.

영국 약사회도 발끈한 ‘갤러리 약국’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의 독특한 공간은 바로 갤러리 2층에 있는 ‘약국’이다. 물론 진짜 약국은 아니다. 약국처럼 꾸민 공간이다. 이곳 벽지는 알록달록한 알약 패턴이다. 진열대에 장식한 약병과 알약 따위는 진짜 약국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 공간은 그대로 하나의 설치 작품이다. 허스트가 인테리어를 맡은 레스토랑인 ‘파머시(Pharmacy) 레스토랑&바’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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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시는 1997년 런던 노팅힐에 실제로 문을 연 레스토랑이다. 2003년 문을 닫을 때까지 레스토랑은 런던 시민이 손꼽은 이른바 ‘힙’한 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국 약사회는 허스트의 레스토랑이 이름뿐만 아니라 인테리어까지 진짜 약국 같아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게 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갤러리에 방문한 날,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었다. 갤러리로 향하는 도중 한 가족을 마주쳤는데 약국을 찾고 있는 관광객이었다. 약국을 찾던 여행자 가족이 구글맵에 ‘Pharmacy 2 Cafe’라고 표시된 허스트 작품 사진을 보고 약국으로 착각하고 주변을 서성거린 것이다. 레스토랑은 2003년 문을 닫았지만 2016년부터 레스토랑 내부 인테리어를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에 상설 전시하게 됐고, 허스트는 이 작품에 ‘Pharmacy 2’라는 제목을 붙였다.

허스트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약은 신뢰하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 점이 놀랍다”며 “자신은 예술이 약처럼 치유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술의 치유 기능을 강조하는 허스트의 말은 예술 상업화에 앞장선다고 비판을 받는 그의 행보와 어긋나 보인다.

미술계의 악동을 보는 엇갈린 시선

허스트는 상업화한 미술계 흐름을 잘 타서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작가일까? 아니면 상업적 성공을 위해 미술에 뛰어든 작가일까? 그는 작품을 고가에 판매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은 적도 있다. 2007년 그가 제작한 ‘For the Love of God’이 바로 논란이 된 작품이다. 해골 형상에 2156g의 플래티넘과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장식했다. 이 작품은 제작된 해인 2007년 5000만파운드(당시 약 983억원)에 팔렸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나 나중에 작품을 매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이 밝혀냈다. 허스트가 작품을 실제로 판매하지 못했으면서도 엄청난 작품 가격으로 미디어의 이목을 끈 것이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가 자기 작품을 홍보하고 나아가 작품 가격까지 높이려고 거짓말했다는 의심을 샀다.

허스트는 2008년 개인 경매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이 경매에서 갤러리나 딜러를 통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판매해 총 1억1100만파운드(약 2397억원)어치의 작품을 팔아 치웠다. 평가는 엇갈렸다. 허스트가 한 시도를 두고 ‘미술 시장에서 작가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단지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라는 입장도 팽팽했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든, 그가 작가이자 컬렉터로서 미술 시장의 생태계를 남다르게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에는 허스트 개인의 컬렉션뿐만 아니라 그가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동시대 작가 작품도 상당수 전시되고 있다. 모든 전시는 무료다. 무료로 공개되는 갤러리 전시는 대중의 현대 미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 의도뿐일까.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는 ‘작가 허스트’뿐 아니라 ‘컬렉터 허스트’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즉 갤러리를 ‘허스트 컬렉션 알리기’의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뉴포트스트리트갤러리는 미술을 공공에 개방하고자 하는 이상과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는 전략이 교묘하게 얽혀 있는 공간이다.

김선경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