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서 882억원에 달하는 부당대출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퇴직한 직원이 현직 직원인 배우자, 입행 동기 등과 공모해 수백억원의 부당대출을 받아 부동산 수익을 거뒀는데 기업은행 본사 차원에서 사건 은폐 시도까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금감원에 따르면 기업은행에서 적발된 전·현직 직원 연루 부당대출 사고액은 882억원, 사고 건수는 58건이다.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중 785억원은 퇴직 직원 A씨와 관련이 있다. 사고 기간은 2017년 6월부터 2024년 7월까지로, A씨는 총 51건의 부당대출을 수령했다.
14년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한 A씨는 본인과 가족, 직원 명의로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같은 은행에 재직 중이던 배우자, 입행 동기, 사모임 등을 통해 친분을 쌓은 임직원 28명과 공모하거나 도움을 받아 부당대출을 받았다. 대출 관련 증빙, 자기자금 부담 여력 등을 허위로 작성했음에도 심사역인 은행 임직원이 이를 묵인하고 공모해 부당대출을 내주는 식이었다.
A씨의 배우자(당시 심사역)와 기업은행 한 지점장은 2018년 9월부터 11월까지 허위 증빙 등을 이용한 A씨가 쪼개기 대출을 통해 자기자금 없이 대출금만으로 토지를 구입할 수 있도록 64억원의 부당대출을 취급·승인했다.
A씨의 배우자는 2020년 9월 사업성 검토서상 자금 조달계획을 허위로 작성해 지식산업센터 공사비 조달 목적의 여신 59억원을 승인했고, A씨의 배우자가 속한 지점의 지점장과 다른 심사역도 이를 묵인한 채 대출을 승인해 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본인소유 지식산업센터에 은행 점포를 입점(임대차)시키기 위해 고위 임원 B씨에게 부정 청탁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B씨는 실무 직원의 반대에도 4차례 재검토를 지시했고 점포를 A씨 소유 건물에 입점시켰다. 점포 개설 후 B씨의 자녀는 A씨 소유 업체에 취업한 것처럼 꾸며져 2년간 급여를 지급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해외 골프 접대 등을 통해 임직원들과 친분을 쌓고 부당한 대출을 유도했다. 일부 임직원 배우자를 직원으로도 채용했다. 부당대출 관련자 8명의 배우자는 A씨가 실소유주인 업체에 취업하는 방식 등으로 15억7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금감원은 부당대출 사건에 대한 은폐 시도 혐의도 발견했다. 기업은행이 이 같은 사실을 제보를 통해 파악했음에도 부당대출과 금품 수수 사건을 내부적으로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고 이를 금감원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검사를 방해하기 위해 문서와 사내 기록을 고의로 삭제한 사실도 적발했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이 지난해 8월 A씨와 입행 동기의 비위 행위 제보를 받고 9∼10월 자체조사를 통해 여러 지점과 임직원이 연루된 부당대출, 금품수수 등 금융 사고를 인지했지만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고 사고 은폐·축소를 시도하고 조직적으로 검사를 방해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의 2월 말 현재 부당대출 잔액은 535억원으로, 이 중 17.8%인 95억원이 부실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브리핑에서 “향후 자금 돌려막기가 더 어려워져서 부실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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