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 중에는 사용자가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을 징계할 경우 사전에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단체협약 규정은 때로는 ‘조합활동으로 인한 징계’ 등으로 적용 범위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런 사유 제한 없이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을 징계하려면 반드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견으로는 단체협약상 징계 동의 규정의 정당성에 다소 의문이 있다. 이러한 규정은 사용자의 징계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에 대하여 비조합원과 비교하여 차별적인 규율을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지배·개입이 문제될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혁적으로는 과거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방해하기 위한 목적에서 징계권을 남용하였다는 고려에서 이러한 부당징계 및 부당노동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위 단체협약 규정이 도입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부당노동행위나 불합리한 인사관리가 계속되고 있다는 등의 특별한 정황이 없다면, 단순히 노동조합 간부 또는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징계 자체를 면제받을 수도 있는 면책특권과 같은 규정을 두는 것은 현시점에서는 오히려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에 대한 과도한 특혜로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
특히 복수노조 사업장 중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단체협약 규정의 불합리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우가 있다. 복수노조 사업장인 A사는 양대 노조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안 좋았는데, 식당이나 작업장 등에서 다른 노동조합 소속 간부나 조합원들이 만나면 언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잦았고, 심한 경우 물리적 충돌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문제는 1노조 단체협약에는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2노조 단체협약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어 항상 2노조만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지어 동일한 징계사유가 발생하였는데도 특정 노동조합 소속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받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업장의 노노간 갈등은 감당하기 어려운 노사갈등으로 번져갔다.
미국 판례 중에는 단체협약상 징계 동의 규정의 차별적, 부당노동행위적 성격을 명확히 지적한 사례가 있다. 미국 연방 항소법원은 Perma-Line 사건[Perma-Line Corp. v. Sign Pictorial & Display Union, 639 F.2d 890 (2d Cir. 1981)]에서,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는 노동조합 간부를 해고할 수 없다’는 단체협약 조항이 연방노동관계법(NLRA)상 노동단체 가입 관련 차별을 금지한 조항을 위반하여 위법하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위 사건에서는 일반직원과 노동조합 간부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해당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 간부는 단체협약에 따라 조합의 동의 없이 해고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위 노동조합 간부는 실제로 해고되지 않았다. 미국 법원은 이러한 단체협약 규정이 차별적이고 부당노동행위의 요소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단체협약에서 이러한 조항이 유지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노동조합이 아무런 이유 없이 동의를 거부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여 절차 진행을 지연시키는 경우다. 이런 경우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동의권을 남용하고 있는 것인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법적 판단을 구해야 한다. 판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의 집단적 동의권에 관해서는, 2023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의 동의 거부가 ‘동의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으나[대법원 2023. 5. 11. 선고 2017다35588, 2017다35595(병합) 전원합의체 판결], 단체협약상 징계 동의 규정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을 인정한 선례들이 이미 적지 않게 축적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이 인정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사용자가 수차례 협의를 시도하였으나 노동조합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거부만 하거나 일체의 협의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대법원은 사용자가 노동조합 간부를 포함하는 정리해고에 관하여 26회에 걸쳐 협의를 하였으나 노동조합이 합리적 이유 없이 무작정 거부한 사안에서,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0다38007 판결).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이 인정될 수 있는 또다른 사례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로서, 대표적인 경우는 노동조합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위원장이나 핵심 간부가 징계대상자가 되어 사실상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경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경우 징계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일본에서는 유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일본 동경고등재판소는 노동조합의 실질적인 구성원이 2명뿐인 상황에서, 이들이 회사 사장을 감금하고 폭행하여 징계 대상자가 된 사안에서, 회사와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상 사전 협의 조항에 따라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동의권 남용을 인정하였다(洋書센터 사건).
요컨대,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의 징계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징계 동의 규정을 단체협약에 두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규정은 사용자의 인사권을 크게 제약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조합원과 비조합원간, 특정 조합원과 다른 조합원 간 차별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단체협약상 그러한 조항이 있다면 해당 조항의 취지를 최대한 준수하여 정당한 징계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기 위한 충분한 설득과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징계사유가 명백하고 징계 양정도 합리적인 상황에서 회사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무조건적 반대나 비협조로 일관하는 경우, 그러한 반대나 비협조는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구자형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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