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력 정치인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의 2027년 대선 출마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재판부가 공금 횡령 사건 1심에서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하면서다. 르펜 의원이 즉시 항소 의사를 밝힌 가운데 이번 판결을 두고 “엄격한 법 집행”이란 시각과 “정치적 결정”이란 시각이 맞서고 있다. 사법부가 선출직 공직자의 정치적 권리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르펜 의원은 선고 당일 밤 판결이 정치적 결정이었다고 강조하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그는 “재판장은 법치주의에 반해 즉시 피선거권을 박탈시키겠다고 말했다”며 “내가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는 걸 막기 위해 내 항소를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유력 대권 주자인 자신의 출마를 차단한 것을 두고 “민주주의와 국가에 어두운 날”이라고 덧붙였다. 지지자에게는 “낙담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정치적 은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날 법원 결정으로 르펜 의원은 항소심이나 최종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2027년 4월 치러지는 차기 대선 출마가 사실상 막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공직 출마를 즉각 금지하는 판결은 이례적으로 엄격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우파 진영에선 사법부가 정치에 지나치게 개입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로랑 와키에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된 대표가 선거 출마를 금지당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치적 논쟁은 투표함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파 성향의 르피가로도 이번 사법부 결정을 “정치인의 미래를 마비시키는 사법 수단”이라며 “무죄 추정의 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많은 사람이 그녀가 무엇에 대해서도 유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자신이 지난 미국 대선 때 네 차례 형사 기소된 상황 등을 빗대며 “이는 매우 이 나라(미국) 같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급진 좌파는 민주적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을 때 법 체계를 악용해 정적을 감옥에 보낸다”고 비판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유권자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종종 법원 판결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했고,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SNS에 “내가 마린이다”는 메시지로 지지를 보냈다.
르펜 의원의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지면 RN은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30)를 대안으로 내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여론조사업체 오독사의 정치인 호감도 조사에서 바르델라 대표는 35%를 기록해 르펜 의원(37%·복수 응답 가능),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36%)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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