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몸값 5조원대로 거론되는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을 매각한다. 한해 6000억원 넘는 이익을 내는 그룹 내 최대 알짜 계열사를 내놓기로 한 것이다.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가 SK스페셜티에 이어 SK실트론도 인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는 SK실트론 경영권 지분 70.6%를 팔기로 했다. 작년 11월부터 몇몇 대형 PEF와 논의하다가 현재는 한앤컴퍼니와 단독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양측은 상반기 안에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는 계획이다.
SK실트론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12인치 웨이퍼 기준)에 올라 있다. SK㈜는 2017년 LG그룹이 보유했던 LG실트론 지분 51%와 재무적 투자자(FI) 지분 19.6%를 총 7900억원 안팎에 인수했다. 나머지 29.4%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들였다. 최 회장의 보유 지분은 이번 매각에서 제외됐다.
SK실트론은 SK그룹에 인수된 뒤 급성장했다. 매출은 2017년 9331억원에서 지난해 2조1268억원으로 커졌고,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같은 기간 2409억원에서 6400억원으로 늘었다. SK그룹에서 중단된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뤄지면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수혜를 봤다.
알짜 계열사로 키운 SK실트론을 매각하는 것은 SK그룹의 ‘리밸런싱’(사업 재편) 차원이다. 국내외 경영 불확실성 속에 비주력 사업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거래가 성사되면 SK㈜는 3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추산된다. SK스페셜티 매각가까지 합치면 6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도로 지난해부터 숨 가쁘게 진행한 그룹 사업 재편은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IB업계 관계자는 “과거 유동성 부족이 현실화한 뒤 구조조정에 나선 일부 그룹사와 달리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사업을 선제적으로 매각해 유동성을 마련한 SK식 사업 재편이 재계에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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