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국의 상호관세율을 25%로 제시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9일 최종 부과까지 협상 시한이 남았지만 미국이 이제 와서 한국 관세만 ‘제로(0)%’로 낮춰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정부가 서둘러 대미 협상에 나서 조금이라도 관세율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한·미 FTA 이후 새로운 국제무역 질서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에 높은 수준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관세 철폐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 FTA는 껍데기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국은 FTA 체결국 중 유독 한국에만 가장 높은 관세율을 적용했다. 호주 칠레 콜롬비아 싱가포르 등 11개국은 기본 관세율인 10%를 적용받았다. 이스라엘(17%), 니카라과(18%), 요르단(20%)은 기본 관세율보다 높았지만 한국보다는 낮았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의 상호관세로 FTA는 사문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선제적으로 FTA가 정상화될 때까지 적용을 유예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강 대 강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국내에선 FTA 무용론이 더욱 거세지겠지만 무효가 된 건 아니다”며 “한·미 FTA는 안보와 경제를 같이하는 전략적 동맹이란 관점에서 체결돼 그 틀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당국은 국가별 차등 관세가 부과되는 9일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경쟁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세율을 끌어내려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공개 입찰’을 시작한 만큼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일 방안을 제시하는 게 출발점”이라며 “관세는 한번 부과되면 오래 지속되는 성질이 있으니 속전속결 협상이 최우선”이라고 당부했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일본보다 관세율이 1, 2%포인트 높고 낮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적 관세율을 낮추는 게 우선”이라며 “품목별 예외 조항 등을 적극 활용하고, 미국 시장 품목별 수출량과 경쟁 국가 등을 면밀히 따지는 세밀한 실무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대미 협상할 때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와 협력하고, 리스크는 서로 나누는 공조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상호관세 부과 조치를 협상 시작점으로 여기고, 국내 주요 기업이 공동으로 ‘대미 투자 패키지’를 내놓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김대훈/김리안/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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