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가 시작되기 전, 딜(deal)을 정의한 첫 장의 짧은 글을 음미하면 이들이 왜 엇나가는 대화를 하는지 알 수 있다. 딜은 ‘금지되거나 엄격하게 통제되는 가치를 취급하는 상거래’이며, 약속된 신호들과 이중의 의미를 지닌 대화를 통해, 주로 상가가 문을 닫을 무렵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쓴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사뮈엘 베케트, 장 주네를 잇는 현대연극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콜테스의 연극은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47개 국가의 무대에 올랐다. 프랑스 연극계에서 콜테스는 ‘두드러진 현상’, ‘신화’로 불릴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1990년대 이래로 프랑스 문인 중 국외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희곡으로나 공연으로나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콜테스가 인상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작가가 어느 날 밤 뉴욕의 창고 근처를 지나갈 때 한 남자가 다가와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있다”며 접근했다고 한다. 그 남자가 가진 건 여러 가지 마약이었다. 그때 콜테스는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라고 답하면서 ‘나’와 ‘타인’ 간의 관계를 이루는 본질을 발견했다.
도무지 어떤 물건인지 밝히지 않으면서 사라고 권하는 사람과 그 물건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 그 상황을 상상하며 희곡을 읽어보라.
딜러는 “당신이 이 시간에 이런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단정하며 접근한다. “당신이 내게 요구할 것을 내가 이미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내게 요구하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내게 당신의 욕망을 알아맞히라고 요구하지는 마십시오”라며 안달한다.
집요한 딜러와 달리 손님은 “나는 어떤 특정한 장소와 시간 속을 걷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며 걸어가고 있을 뿐이지요. 내겐 당신에게 제안할 것도, 욕망도 없습니다”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딜러와 손님의 철학적이면서 집요한 대사는 어긋나고 격돌하면서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무얼 가졌는지 말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사라고 권하는 딜러의 심리는 “장사꾼이 예의를 갖출수록, 손님은 더 삐딱하게 나오기 마련이지요. 모든 장사꾼은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욕망까지도 만족시켜주려고 애쓰는 반면, 손님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을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다는 데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곤 하니까요”라는 대사에 잘 담겨 있다.
왜 내게 요구하지 않느냐고 절규하는 딜러에게 “손님을 조심하세요. 그는 뭔가를 찾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걸 원하고 있답니다. 장사꾼은 짐작도 못 하는 그것을 그는 결국 얻어내고 말지요”라고 일침을 놓는다.
욕망 과잉인 딜러와 욕망 부재인 손님, 마지막까지 “당신은 내게 원하는 걸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내게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았단 말입니다?”라며 공방을 벌인다.
짧고 의미 없는 말이 난무하고 빠른 자극에만 반응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의미를 담은 긴 대사를 찬찬히 되새기면 깊은 울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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