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이끄는 조지프 배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의 모든 시장이 외부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게 됐다”며 “지정학적 위험을 투자 전략에 반영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 이후 특정 국가에 의존하던 공급망의 취약성을 실감하면서다.
배 CEO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극대화한 지금이 오히려 최적의 투자 타이밍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목격한 개별 국가와 기업들이 핵심 인프라를 확보하거나 지키기 위한 투자에 집중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에서다.
그는 “인공지능(AI)과 이를 뒷받침할 해저 케이블, 데이터센터 등 아시아의 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 상당한 투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환경 변화를 꼽자면.
“세 가지 메가트렌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선 자산을 매각해 몸집을 가볍게 만들려는 기업이 증가할 겁니다. 자본 효율성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둘째,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재정적자를 이유로 ‘작은 정부’ 기조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민간 주도의 성장이 본격화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지정학적 갈등, 사이버 보안 위협, 보호무역 강화 등에 따라 공급망 위험이 커지면서 에너지, 데이터, 물류, 의약품 등 주요 분야 회복 탄력성을 높이려는 투자가 급증할 것으로 봅니다.”
▷지정학적 갈등이 꽤 심한데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을 받고 있어요. 인구 구조 변화, 경제적 불평등 심화 그리고 글로벌 이벤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투자 환경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세계화 시대를 이미 지났죠. 공급망과 경제 구조가 훨씬 복잡하고 밀접하게 연결된 시기로 진입했다고 봐야 합니다.”
▷인구 구조도 크게 바뀌나요.
“그렇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을 찍고 있어요. 한국 등 각국 정부는 고령층 부양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퇴직연금 시장 성장과는 별개로요. 인력 재교육과 생산성 향상 수요가 커질 겁니다. 코로나19 이후 발생한 교육 단절 현상과 함께 디지털 전환 가속화가 맞물려 있지요.”
▷관세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관세와 무역 정책에 관한 한 뚜렷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강경한 기조가 이어질 겁니다. 글로벌 기업들에는 공급망을 지키고 복원하는 게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PEF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특정 정권은 단기간이란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죠. 지역별 분산 전략으로 대응책을 짜야 합니다. 예를 들어 A국가에서는 주택 및 유지보수 산업 위주로, B국가에선 소프트웨어 산업 위주로 투자하는 식입니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은 산업군 비중을 높여갈 수도 있고요.”
▷한국 시장은 어떻게 봅니까.
“아시아는 점점 역내 교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이런 흐름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어요. 디지털과 에너지, 공급망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주도적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특히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나요.
“AI와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인프라 쪽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확장기를 맞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이 이 산업의 중심부로 떠오를 겁니다. 이미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요. 운송 인프라와 해저 케이블, 안보, 데이터 및 데이터센터, 에너지 전송 등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원화 약세가 두드러집니다.
“단기적 환율 흐름보다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과 기업들의 우수한 역량을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핵심 사업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겁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일부 산업의 성장 둔화 등 때문이죠. 대기업들은 우리 같은 PEF와 손잡고 글로벌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해외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중견기업과 ‘히든챔피언’(강소기업)들은 운영 개선, 디지털 전환, 유통 채널 확장 등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은.
“KKR의 전체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큰 강점이 될 겁니다. 투자팀뿐만 아니라 글로벌 거시경제팀, 자문단, 포트폴리오 기업 네트워크까지 연결해줄 수 있죠. 지정학적 이슈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승계로 고민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 문제로 PEF와 협력을 확대하는 한국 기업 오너가 계속 늘고 있어요. PEF들이 세대교체와 지배구조 개선을 지원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산운용과 보험, 장기 투자 포트폴리오라는 세 가지 성장 엔진을 마련하고, 부문 간 협업·지원 체제를 갖췄습니다.”
▷주주행동주의와 적대 M&A도 많은데.
“주주행동주의는 기본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 제고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일부 PEF가 이런 전략을 쓰고 있죠. 비핵심 자산을 정리해 재무구조 개선을 돕자는 취지입니다. 기업 경쟁력을 높이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얼마나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느냐를 봤으면 합니다.”
■ 조지프 배 CEO는…
오비맥주 빅딜로 '잭팟'…2021년 보수로 7090억원 받기도
조지프 배(한국명 배용범) KKR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1973년생으로 미국 이민 2세대다.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글로벌 3대 사모펀드(PEF) KKR 수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투자은행(IB)업계에 발을 디뎠다. 1996년 KKR에 합류했다.
배 CEO는 국내에서 오비맥주 딜로 ‘잭팟’을 터뜨리며 이름을 알렸다. 2007년 40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1호 펀드를 조성한 뒤 이 자금으로 2009년 오비맥주를 벨기에 AB인베브에서 18억달러에 인수했다. 5년 뒤 58억달러를 받고 AB인베브에 되팔아 40억달러의 차익을 남겼다. 2021년 KKR CEO로 선임됐다. 그해 총 5억5964만달러(약 7090억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아마존과 인텔 CEO의 보수를 넘어서며 화제가 됐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