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에서 초연한 뒤 지난달 국내에서 처음 막을 올렸다. 영국 극작가 게리 맥네어가 쓴 이 작품은 지킬 박사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의 시선을 따라 선한 인격의 지킬과 그의 어두운 내면에서 탄생한 하이드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단 한 명. 어터슨을 포함해 지킬, 하이드, 지킬의 집사 풀, 지킬의 지인 레니언 박사 등의 인물을 배우 혼자서 소화한다. 남자 배우인 고윤준 백석광 강기둥뿐 아니라 여배우 최정원도 이 1인극에 캐스팅됐다. 노래 없이 흘러가는 연극 특성상 다소 심심한 느낌도 있지만 배우의 몰입도 높은 연기는 관객석을 숨죽이게 할 만큼 강력하다.
연극은 뮤지컬보다 원작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뮤지컬 속 러브라인을 담당하는 여자 주인공 에마와 루시가 등장하지 않고, 대신 원작의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연극 속 하이드는 뮤지컬에 비해 잔인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이드는 원한이 있는 인물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무대는 단출하다. 문과 의자, 책상, 옷걸이가 전부다. 하지만 소극장 특유의 밀도 있는 긴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관객은 어터슨의 묘사를 통해 하이드의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데, 그로 인한 알 수 없는 공포감이 90분 내내 이어진다. 하이드가 어린아이를 짓밟는 장면에선 붉은 조명이, 하이드 집의 문을 비출 땐 녹색 조명이 켜지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하이드가 금방이라도 객석을 덮칠 것 같은 긴장감은 중간중간 배우의 애드리브와 농담으로 누그러진다. 결말은 원작은 물론 뮤지컬과도 다르다. 뮤지컬이 지킬의 비극적 운명에 초점을 맞췄다면 연극은 한발 더 나아간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 안의 하이드는 누구입니까”라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드라마틱한 음악과 배우들의 압도적 가창력의 힘으로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국민 넘버(뮤지컬 속 음악)가 된 ‘지금 이 순간’, 지킬과 하이드의 숨 막히는 대립을 보여주는 ‘대결’ 등을 듣기 위해 뮤지컬을 보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이번 공연엔 배우 홍광호 신성록 최재림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은 연극보다 서사가 풍성하다. 공연 시간(인터미션 포함 170분)이 연극(90분)보다 긴 만큼 두 여성 캐릭터와 얽힌 드라마가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하이드가 인간 본성을 분리하는 실험에 반대하는 병원 관계자들만 살해한다는 점도 연극과 다른 점이다. 1800여 개의 메스실린더가 색색깔로 채워진 지킬의 실험실도 볼거리다.
익숙한 넘버와 스펙터클한 무대를 선호한다면 뮤지컬 관람을 추천한다. 원작에 가까운 심리극의 묘미와 인간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고 싶다면 연극이 적합하다. 뮤지컬은 다음달 18일까지 용산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극은 다음달 6일까지 대학로 티오엠에서 관람할 수 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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