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를 집어삼키는 듯했던 실리콘밸리의 최근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관세, 이민, 과학기술 등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이 기업, 대학, 지역 사회를 강타하면서다. 평일엔 대학가에서, 주말엔 도심 곳곳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일어나는 건 예삿일이 된 지 오래다.
롤러코스터 같은 주가에 많게는 연봉의 60% 이상을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으로 받는 말단 엔지니어도 자산 가치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 빅테크 엔지니어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어 뉴스를 잘 안 보는데 요새는 매일 눈을 뜨면 트럼프 대통령이 밤사이 관세와 관련한 말을 하지 않았는지 기사를 찾는다”고 말했다. 과거 정치에 무관심했다가 이제는 정치 고관여층이 된 이들은 회사 익명 커뮤니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밀착한 경영진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며 사내 동요를 이끌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다양성과 개방성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재와 좋은 아이디어라면 창업자의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지원하는 현지 벤처캐피털(VC)의 막대한 자금력이 커다란 시너지를 만들어냈기에 가능했다. 세계 각국 창업가들이 고국을 떠나 실리콘밸리에 몰려들어 창업하고 기업을 키운 덕에 미국 부(富)가 불어났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어떤가. 비자 연장이 거절된 외국 국적 엔지니어는 고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혹여나 비자가 취소될까 두려움에 빠진 유학생은 방학 기간 고국행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있다. 다양성을 앞세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던 실리콘밸리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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