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복수 공급사 시스템이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8년 동맹’에 균열을 내는 빌미가 됐다.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에 집중된 TC본더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을 복수 공급사로 선정한 게 ‘감정싸움’으로 번진 것. 업계에선 50조원(2024년 기준) 규모로 급성장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함께 일군 두 회사의 갈등이 자칫 대한민국의 HBM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랬던 두 회사에 균열 조짐이 불거진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SK하이닉스가 싱가포르 ASMPT를 TC본더 복수 공급사로 고려한다는 소식이 시장에 퍼졌기 때문이다. 뒤이어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에 테스트용 TC본더를 공급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소문은 한화세미텍이 지난달 “SK하이닉스에 420억원 규모 TC본더를 공급한다”고 밝히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두 회사가 이런 강수를 둔 건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미반도체는 최근 세계 3위 D램 업체 미국 마이크론에 TC본더 납품을 늘리고 있다. 대만 공장을 중심으로 HBM 생산라인을 확장 중인 마이크론은 한미반도체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마이크론에 1110억원어치를 팔았는데, 올해는 3~4배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 제품을 구매한 데도 이유가 있다. 특정 장비사에 100% 의존하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할 뿐 아니라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자칫 HBM 생산이 멈춰 설 수 있다는 걱정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2020년 TC본더 개발을 시작해 ‘3차원(3D) 스택’이란 자체 기술을 개발한 한화세미텍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극적 화해 가능성도 거론된다. 극한 갈등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가 제시한 28% 가격 인상안을 SK하이닉스가 받아들일지는 이달 말께 결론 날 전망이다.
▶ TC본더
D램을 쌓아 만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 공정에서 열과 압력을 가해 개별 D램을 연결하는 핵심 장비. 개별 칩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고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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