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만 90세를 맞은 1세대 창업자,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자신의 경영 에세이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문학동네) 출판을 기념해 강연회를 열었다.
23일 저녁 서울 논현동 교보타워에서 열린 출판 기념 강연회는 연예인 행사 못지않게 인기를 끌었다. 동원그룹 내부에서도 참가 접수 30분 만에 모두 마감됐고, 일반인 경쟁률은 5 대 1을 넘겼다.
김 회장은 파란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의자에 앉지 않고 한 시간 가까이 서서 강연을 이어갔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는 또렷했고, 힘이 넘쳤다.
원양어선 실습 항해사로 시작해 오늘날의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일궈낸 김 회장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무대 위에 펼쳐졌다. 그동안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던 당시 이야기도 튀어나왔다. 2007년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으로서 비밀리에 작은 섬나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표를 모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캡틴 킴’의 면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그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권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도전은 매번 성공하지 못하지만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기하기로 한 것은 빨리 포기해야 손에 새로운 것을 쥘 수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한국의 1세대 창업자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맞더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김 회장도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긍정적 통찰력을 내놨다. 그는 “예전에는 고성장이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수가 적었다”며 “지금은 1만 개 이상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고성장하는 분야도 많다”고 설명했다.
각 개인이 수많은 산업 분야 속에서 경쟁력을 갖춘다면 개인은 고성장하는 사회라는 게 그가 내놓은 돌파 전략이다. 그는 개인이 삶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고, 목표를 세웠으면 구체적 계획을 인생의 역순으로 짜야 한다고 책에서 강조했다.
‘영원한 청년’이란 별명을 지닌 김 회장은 아직도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그는 “어류가 싫어하는 저주파로 그물을 만들어 이걸로 바다에 양어장을 만들 순 없을까 하는 식으로 다소 황당한 생각을 자주 한다”며 “엉뚱하더라도 꿈을 계속 꾸면 청년인 것”이라고 말했다.
어류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눈은 20대 청년처럼 빛났고, 목소리 속도는 빨라졌다. 그는 “연어는 1㎏의 고기를 얻는 데 필요한 사료량이 1.1㎏으로 어류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단백질원”이라며 “동해 물을 끌어와 육상 연어 양식장을 만들려는 것도 미래의 단백질원으로 연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층 해수를 끌고 오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고, 사업이 진척되기까진 최소 3년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는 듯 말했다. “생전에 육상에서 양식한 연어를 먹어보고 싶네요….”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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