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 '뒷북 등급 강등' 구태 사라질까(종합)

입력 2016-09-21 19:14  

<<자체신용제 도입 배경으로 KT ENS 사례 추가하는 등 내용을 보완합니다.>>

금융위원회가 21일 신용평가 시장의 신뢰회복방안으로 내놓은 다양한 대책들은 자체신용제, 신용평가사 선정 신청제, 신평사 제재 강화 등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제4신용평가사 도입이 유보되는 쪽으로 결론이 나 근본적인 개선 방안이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동양, STX그룹 사태에 이어 최근의 조선·해운업 부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해당 기업 신용등급을 '뒷북치기' 식으로 조정했던 신평사들이 이들 대책으로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 왜 나왔나 신용평가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여론은 2012년 발생한 '동양 사태'를 계기로뜨겁게 일었지만 구체적인 개선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계열사를 급속도로 늘리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동양그룹은 파산을 피하기 위해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마구 찍어내 위기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신평사들은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까지 우호적인 등급을 주다가 법정관리 신청 후에야 부랴부랴 신용등급을 채무불이행 상태로 강등했다.

동양은 BB0에서 D로 강등됐고, 동양시멘트는 BBB-에서 D로 떨어졌다. 신평사 등급을 믿었던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신평사들은 제때 문제 기업의 신용등급을 조정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더불어 '등급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함께 받아왔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042660], 한진해운[117930] 등 조선·해운사들이 줄줄이조 단위 손실을 본 것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신평사들은 '뒷북' 신용등급 조정에 나서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대우조선은 작년 4월만 해도 신용등급이 A였지만 그해 7월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자 BBB로 강등된 데 이어 그해 말에는 BB+로 다시 조정됐다.

신평사들은 2014년부터 리포트 등을 통해 조선·해운사에 대한 잠재적 리스크를경고하면서도 정작 신용등급에는 리스크를 반영하지 않았다.

특히 글로벌 신평사인 무디스가 부도발생 전부터 점진적으로 신용등급을 낮춘데 반해 국내 신평사들은 급격히 강등해 시장의 신뢰도는 더 낮아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3개사 중심으로 형성된 과점 체제의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신평사 간 비교를 통한 차별화된 평판이 형성되지 못하는 점과 신평사가 기업의영향력을 크게 받는 시장 구조, 금융당국의 검사·제재에 실효성이 부족한 현실 등에 대한 개선 여론이 조성됐다.

◇ '그룹 후광 배제' 자체신용제 도입, 신용평가 신뢰성 높일까 금융당국이 이 같은 배경에서 내놓은 대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체신용제도입이다.

이 제도는 그룹의 모기업이나 계열사의 지원을 받지 않고 해당 기업이 독자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2014년 대규모 사기 대출에 연루돼 법정관리까지 간 KT ENS는 사건이 터지기 직전 재무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KT의 지원을 감안해 신용등급 A를 받았다가 뒤늦게D 등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 사례는 계열사 지원을 고려한 현행 신용등급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해당 기업으로선 매우 민감한 부분일 수밖에 없지만, 금융당국은 내년부터 금융사를 시작으로 자체신용제의 빗장을 열기로 했다.

이 제도는 2012년과 2015년에도 도입이 추진됐지만 기업들의 반발과 시장 상황등으로 인해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는 일반 기업의 경우 2018년부터 시행하도록 해 1년의 유예기간을 주기로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자체신용도 도입은 기업의 건전성 강화와 투자자가 투자결정을 하는 데 추가적인 정보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조치"라며 "2012년과 2015년 도입이 추진되면서 검토가 다 끝난 제도였는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2012년에도 정권이 바뀌면서 도입이 무산된 만큼 정권이 또다시 바뀌는 2018년에 실제로 제도가 계획대로 시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신평사 선정 신청제는 그동안 '뒷북 평가'의 원인으로 지적된 신용평가 시장 구조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기업이 신평사를 고르는 현 구조에서는 신평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다만 이는 의무화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것이어서 얼마나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기업이 원하면 선정 신청을 하는 것이어서 기업이 신평사보다 우위에 있는 기존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제4신평사 도입은 추후 과제로 그러나 신용평가시장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됐던 제4신평사 도입은일단 유보됐다.

시장의 규율과 당국의 규제가 미흡한 현 상황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 영업 경쟁을 심화시켜 '등급 쇼핑' '등급 인플레이션' 같은 부작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시장을 3분의 1씩 안정적으로 분점하고 있는 기존 신평사 3곳의 반발도 제4신평사 도입 유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번 선진화 방안은 제4신평사 도입이 빠지면서 경쟁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시장구조 개혁을 미완의 과제로 남겨놓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실장은 "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큰 사안이기 때문에 한 번의 논의로 결정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수차례 도입 추진과 무산의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시장평가위원회 설치를 통해 시장에 언제든 제4신평사가 등장할 수있다는 시그널을 줬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chomj@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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