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여전히 머나먼 그 이름, 노벨과학상

입력 2016-10-08 06:01  

"스타 과학자에 기대기보단 젊은 연구자 지원해야"관 주도 과학 정책 안돼…풀뿌리 연구과제 늘려야

지난 5일 노벨화학상 수상자 발표를 끝으로 2016년 노벨과학상 발표가 모두 끝났다.

이웃나라 일본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를 포함해그동안 22명의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냈지만, 올해도 우리나라는 상을 받지 못했다.

매년 노벨상 시즌만 되면 과학계와 언론이 기대에 들떴다가, 수상에 실패하면 '국가 연구개발(R&D)에 대해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주문만 되풀이된다.

연구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젊은 과학자를 육성하고, 연구하기 좋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스타' 과학자 찾기보단 젊은 연구자 육성해야 1901년 노벨상이 처음 제정된 이후 1992년까지 노벨 과학상을 받은 414명의 평균 연령을 살펴보면 노벨상 수상 과제와 관련된 연구를 시작하는 연령은 평균 32.7세였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난달 27일 한국연구재단 대전청사에서 열린노벨과학상 정책토론회에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 성과는 포스트닥, 즉 젊은박사 후 연구원들로부터 나온다"면서 "지난 25년 동안 노벨생리학상 수상자 가운데40세 이하 수상자가 전체의 54%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은 열악한 연구환경 때문에 대부분 해외로 떠나는것이 국내 과학계의 현실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년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에서 취업해 한국을 떠난 이공계 박사 인력은 2013년 기준8천931명으로, 2006년(5천396명)에 비해 65.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 세계 인재 보고서'(IMD World TalentReport 2015)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61개국 가운데 두뇌 유출로 인한 국가 경제의경쟁력 저하 문제가 18번째로 심각한 나라로 꼽혔다.

국내 이공계 연구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보니, 과학기술 분야 대학을 졸업하고도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등 아예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1천500명의 전국 이공계 대학생이 의·치전원, 로스쿨 등으로 빠져나가, 5년 동안 7천733명의 이공계 학생이 전공과 관계없는 의학·법학 분야를 선택했다.

김선영 교수는 "스타 과학자에 기대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젊은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연구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실험 인프라와 환경이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서 과학계의 '스타'를 발굴하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도 "미국에서는 새로 임용된 자연과학 학과신임교수들에게 평균 10억원의 초기 정착금을 지급한다"면서 "우리는 신규 교수에게주는 지원금이 너무 적어 직접 은행에 융자를 받으러 다니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어려움을 토로했다.

현 교수는 "마치 최첨단 탱크와 구식 소총이 서로 싸우는 꼴"이라면서 "가장 중요한 연구결과는 교수로 임용되고 10년 이내에 나오는 만큼,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높이려면 신진 연구자들의 척박한 연구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기초과학 예산 비중 높이고 풀뿌리 연구과제 늘려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9년에는 GDP의 2.07%를연구개발(R&D)에 투자했고, 2014년에는 4.29%까지 비중을 늘렸다.

총 연구개발 예산이 아닌 GDP 대비 투자 비율로 따지면, 이스라엘(4.11%)을 앞질러 세계 1위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 연구개발 예산 19조원 가운데 기초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6%에 불과하다.

정부가 '돈 되는 연구', '사업화가 가능한 연구'에만 예산을 '몰빵'하다보니,상대적으로 상용화와는 거리가 먼 순수 기초과학은 홀대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체 정부 연구비의 47%를 기초과학에 투자하며, 그중 대부분은 연구자가 주제를 정한다.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정부의 기형적 연구개발(R&D) 예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 등 과학자 92명은 지난달 26일 생물학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올렸다.

이들은 "현장의 과학자들은 정부가 지속해서 연구개발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구는 점점 위축되는 위기 상황임을 느끼고 있다"면서 "연구자주도의 기초연구지원은 소액과제에 편중돼 있고, 정부 주도 국책연구는 점점 대형화해 연구비 구조의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연구자들은 '알파고'가 뜨니 뇌 지도를 만들겠다고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고, '포켓몬 고'가 유행하면 증강현실 산업을 키우는 지금의 연구 풍토로는 세계가 놀랄만한 연구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거머쥔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는 40년 동안 남들이 하지않는 효모 연구에만 매달린 끝에 빛을 봤다.

현택환 교수는 "시대의 조류나 인기에 상관없이 연구자 개인이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과제를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일본의 노벨상 수상 비결"이라면서 "우리도 연간 1억원 내외로 10년 동안 꾸준히 지원하는 풀뿌리 연구과제 지원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과학에 관 개입 안 돼…자율적 연구환경 만들어야 현장 연구자들은 지금의 연구과제중심(PBS·Project Based System)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 한, 마음 놓고 좋아하는 '한우물'만 파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PBS는 연구기관이 정부나 민간 등으로부터 연구과제를 수탁해 인건비 등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경쟁력을 갖춘 연구기관과 인력에 연구비를 나눠주는 합리적인 제도이지만, 현실에서는 연구기관들이 본연의 임무나 영역과 동떨어지더라도 돈이 몰리는 분야라면무리하게라도 과제를 엮어 '연구비 따기' 경쟁에 나서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오세정 의원이 지난달 19∼23일 KAIST(한국과학기술원) 등 전국 과기특성화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 소속 연구원 589명을 대상으로 PBS 제도에 대한 설문조사를한 결과, PBS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7%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62.4%가 PBS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32.4%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연구자들은 제도를 폐지·개선해야 하는 이유로 '과도한 과제 수행으로 연구의질이 저하되기 때문'(88%), '연구의 자율성이 침해돼서'(81%) 등을 들었다.

연구자들이 미세한 주제를 놓고 연구비 확보 경쟁을 벌이다 보니 정작 인류 지식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연구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2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이 실적을 쌓기 위해 네이처 등 유명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성과만을 기준으로 연구자들을 계량화해 평가하다보니, 연구환경이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영 교수는 "연구 예산의 배분 과정에 공무원이 절대적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과학기술계에 투서가 속출하고 연구과제 선정에 공정성 시비가 이는 등 부작용이 일고 있다"면서 "관이 과학기술계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현재 관행으로는 좋은 연구를 하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jyoung@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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