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습에 대한 불편한 착각들] 지극히 사적인 혹은 부적절한 대화 주제

입력 2013-04-26 17:19   수정 2013-05-10 16:14

[영어학습에 대한 불편한 착각들] 17편. 지극히 사적인 혹은 부적절한 대화 주제

강의 첫 날이면 어김없이 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바로 수강생들이 가장 민망해하는, 하지만 분위기 전환에는 더 없이 좋은 자기소개 시간입니다. 저는 첫 날부터 영어로 말하는 훈련을 시키는 편이라, 영어로 파트너와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또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데요.

놀랍게도 연령에 상관없이 자기 소개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가 있습니다. 바로 나이 얘기입니다. 초중고 학생들이야 학년 때문에라도 나이가 중요할 수 있는 시기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합니다만, 사회 생활하는 성인들은 왜 나이를 꼭 언급하는 것일까요? 한국에서 ‘나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다른 문화권에서도 우리처럼 ‘나이’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갖는 ‘나이’의 의미는 무엇이고 왜 우리는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것일까요? 저는 호칭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사석에서 서로 친밀감을 표현하고자 ‘언니’ ‘형’ ‘오빠’ 등등의 호칭으로 상대를 부르곤 하는데요, 이런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나이를 묻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유교문화도 다른 이유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나이만큼이나 서로 자주 묻는 주제는 결혼이지요. 서로 결혼했는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혹은 이성친구가 있는지, 이성친구가 있는 경우에는 언제쯤 결혼할 예정인지도 묻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는데요. 결혼한 경우에는 자녀가 있는지, 혹은 자녀의 나이를 비교하며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자연스럽고 공통의 화제가 될 수가 있는 동시에 지극히 사적인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떨까요? 서양 문화에서는 나이, 결혼에 대한 질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으로, 초면에 묻는 것은 큰 결례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나이와 학년을 묻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성인들끼리 나이를 묻는 것은 그들에게는 다소 낯선 문화입니다.

이력서에조차 생년 월일을 기재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그들에게는 성인들끼리 처음 만나 상대를 알아가는데 나이는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아마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한국의 문화대로 그들에게 나이를 묻는다면 그들은 ‘왜 나이를 묻는 거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에 대한 질문은 어떨까요? 그런데 한 번 이렇게 생각을 해보죠. 상대에게 호감을 갖고 데이트 신청을 하려는 의도가 아닌 이상 굳이 상대에게 결혼 여부에 대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한국과는 달리 그들 문화에서는 대다수의 기혼자들은 결혼 반지를 끼고 다니기 때문에, 상대의 왼손을 확인한다면 결혼 여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문화에서 사적인 대화 주제를 꺼린다고 해서 이러한 주제를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며 틀렸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런 사적인 질문을 문제없이 받아들이는 문화권들이 있는 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상대를 난처하게 하거나 혹은 부적절한 대화 주제가 될 수도 있으니, 이 점을 알고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와 나의 다른 점을 알고 대화하는 것이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것은 언어 습득의 목표인 interaction능력과 우리와 다른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선하 ELF 강사. http://blog.naver.com/goseon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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