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톱스타`를 내놓은 신인 감독 박중훈. 풋풋한 20대 시절부터 장년이 된 지금까지, 다사다난한 우리 곁을 지켜 온 배우 박중훈이 감독이 됐다. 그를 만나자 묘한 느낌이 있었다. 불과 1~2년 전 배우로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둥글둥글해졌다. 그는 시종일관 "엄청 떨린다"며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자 역시 `큰 형님 포스`가 가득한 감독 박중훈을 볼 수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딱히 영화를 위한 인터뷰라기보다, 한참 인생 후배인 기자에게는 달인과의 선문답 같은 느낌을 줬다. 지금부터 그와의 문답을 최대한 느낌 살려 중계한다.
★아쉬움 있지만, 후회는 없는 이유
한국영화 하면 박중훈, 박중훈 하면 한국영화다. 좀 과장된 감도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박중훈 감독은 "28년 동안 30~40편 정도 영화를 했다"고 밝혔다. `톱스타`는 그런 박중훈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다. "아쉬운 점은 없나"라고 묻자 그는 "28년 동안 배우로 출연한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다시 잘할 자신은 있어요. 하지만 더 열심히 할 자신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매 순간 열심히 했다는 얘기다.
"나는 내 인생에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런 훈련이 많이 돼서, 이번에 감독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톱스타`를 다시 찍으라고 하면 더 잘 찍을 것 같긴 한데, 내 능력으로선 최대한 노력해서 찍은 거여서 후회는 없어요." 참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그래도 하나 꼽으라면 나이트클럽 내 룸을 다룬 장면이 약간 아쉽다고. "정말 아방궁처럼 꾸미고 싶었는데, 돈의 문제라서 기존 유흥주점 룸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나머지는 정말 후회 없어요."
★단언컨대, 한 번도 화내지 않았다
박중훈은 "배우 생활을 아주 오래 하다 보니 감독을 해도 놀랄 일이 많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측근에서 감독을 많이 봐 왔거든요. 그런데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이 감독은 정말 소통 능력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랬을까? 그는 `단언컨대` 영화를 찍으면서 한 번도 배우나 스태프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고.
"감독은 그 영화의 리더예요. 그런데 리더가 팀하고 소통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화내는 것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화내는 건 가장 쉽지만 가장 효과가 없어요. 그냥 다들 통하는 척 하는 거죠."
오랫동안 연기를 해 왔기 때문에 박중훈 감독은 누구보다 배우를 잘 안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보여주는 사람인데, 그걸 보듬어 주지 않으면 주의가 분산돼요. 그래서 배우들의 정서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는 데 늘 신경을 썼어요."
박중훈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소감을 `신임 판사`에 비유했다. "연기자나 스태프는 다 감독을 쳐다보거든요. 그런데 감독은 연기자와 스태프를 내려다봐요. 그 뷰(view)가 낯설었어요. 신임 판사는 재판에는 익숙하지만 판사석엔 처음 서잖아요. 꼭 검사나 변호사를 20여년 하고, 처음 판사석에 선 그런 느낌이었어요."
★세월이 깨닫게 해 준 것들
그가 화를 참은 것은 왜일까. 설명에 따르면 `세월` 때문이다. "제가 20, 30대 때는 거의 인내했던 기억이 없어요(웃음). 톱스타라는 권력도 있었고, 성격도 자기 성찰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뭘 별로 참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많이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는 영화를 시작하면서 단순히 `화내지 말자`가 아니라 "화 내는 느낌조차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화내는 모습을 안 보여도 태도나 눈빛에서 알 수가 있거든요. 그래도 스태프 한 두 명은 미울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조차 많이 삭히려고 했지요."
스스로도 `참아 본 적이 없다`는 박중훈이 겸손해진 계기는 무엇일까. "한 마흔 살쯤 됐을까요? 내가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핫(Hot)하지는 않았고요. 결혼한 지도 십수년 되고. 애들도 크니까 뭔가 자각 같은 게 오더군요. 20대와 30대는 그저 성취하기 위해 살아왔는데, 성취를 어느 정도 이루고 나니 이제 앞이 아니라 옆이 보인다고 할까요. 성취 자체가 행복을 주는 건 아니더군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주는 것 뿐이지."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
그는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서도 특유의 입담으로 조언했다. "사람한테는 지성과 야성의 매력이 있어요. 지성은 생각하고 개발하는 것이고, 야성은 주어지는 것이죠. 20대 때는 남녀를 불문하고 야성의 매력이 더 돋보여요. 멋진 지성을 가진 20대 남자가 있어도, 잘 생긴 야성의 매력이 있는 20대 남자한테 밀리죠. 그렇지만 30대 때부터는 야성의 매력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하고, 그 공간을 다른 매력으로 메우지 않으면 점점...더 매력이 떨어져요."
30대 중반쯤 되니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는 멈추지 않고 설명했다. "특정 인물을 거론하면 안 되니까 말을 안 하겠지만, 20대 30대 때는 굉장히 매력 있다가 현저히 매력이 떨어진 배우들이 있잖아요. 전형적으로 타고난 야성 외에 지성을 키우려는 노력을 덜 한 거죠. 반면 늦게 빛을 보는 배우는 지성에 대한 성찰을 많이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박중훈 본인은 어떨까. "저는 20대 때 마치 뾰족한 화강암 같았어요. 그런 뾰족한 화강암은 쥐었을 때 손에 상처를 주죠. 하지만 그걸로 뭔가를 격파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끼 낀 차돌멩이처럼 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잡으면 둥글둥글한데 뭔가를 치면 격파할 수 있어요. 제가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이끼 낀 돌처럼 부드러움이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뭉실뭉실한 돌멩이가 뾰족한 것보다 약한 게 결코 아니거든요."
초반에 말했다. 감독 박중훈이 둥글어졌다고. 그는 이미 1~2년보다도 훨씬 더 둥글둥글해져 있었다. 그런 그가 원하는 대로 나이들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저절로 동의하게 되었다.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wowtv.co.kr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자 역시 `큰 형님 포스`가 가득한 감독 박중훈을 볼 수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딱히 영화를 위한 인터뷰라기보다, 한참 인생 후배인 기자에게는 달인과의 선문답 같은 느낌을 줬다. 지금부터 그와의 문답을 최대한 느낌 살려 중계한다.
★아쉬움 있지만, 후회는 없는 이유
한국영화 하면 박중훈, 박중훈 하면 한국영화다. 좀 과장된 감도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박중훈 감독은 "28년 동안 30~40편 정도 영화를 했다"고 밝혔다. `톱스타`는 그런 박중훈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다. "아쉬운 점은 없나"라고 묻자 그는 "28년 동안 배우로 출연한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다시 잘할 자신은 있어요. 하지만 더 열심히 할 자신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매 순간 열심히 했다는 얘기다.
"나는 내 인생에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런 훈련이 많이 돼서, 이번에 감독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톱스타`를 다시 찍으라고 하면 더 잘 찍을 것 같긴 한데, 내 능력으로선 최대한 노력해서 찍은 거여서 후회는 없어요." 참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그래도 하나 꼽으라면 나이트클럽 내 룸을 다룬 장면이 약간 아쉽다고. "정말 아방궁처럼 꾸미고 싶었는데, 돈의 문제라서 기존 유흥주점 룸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나머지는 정말 후회 없어요."
★단언컨대, 한 번도 화내지 않았다
박중훈은 "배우 생활을 아주 오래 하다 보니 감독을 해도 놀랄 일이 많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측근에서 감독을 많이 봐 왔거든요. 그런데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이 감독은 정말 소통 능력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랬을까? 그는 `단언컨대` 영화를 찍으면서 한 번도 배우나 스태프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고.
"감독은 그 영화의 리더예요. 그런데 리더가 팀하고 소통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화내는 것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화내는 건 가장 쉽지만 가장 효과가 없어요. 그냥 다들 통하는 척 하는 거죠."
오랫동안 연기를 해 왔기 때문에 박중훈 감독은 누구보다 배우를 잘 안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보여주는 사람인데, 그걸 보듬어 주지 않으면 주의가 분산돼요. 그래서 배우들의 정서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는 데 늘 신경을 썼어요."
박중훈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소감을 `신임 판사`에 비유했다. "연기자나 스태프는 다 감독을 쳐다보거든요. 그런데 감독은 연기자와 스태프를 내려다봐요. 그 뷰(view)가 낯설었어요. 신임 판사는 재판에는 익숙하지만 판사석엔 처음 서잖아요. 꼭 검사나 변호사를 20여년 하고, 처음 판사석에 선 그런 느낌이었어요."
★세월이 깨닫게 해 준 것들
그가 화를 참은 것은 왜일까. 설명에 따르면 `세월` 때문이다. "제가 20, 30대 때는 거의 인내했던 기억이 없어요(웃음). 톱스타라는 권력도 있었고, 성격도 자기 성찰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뭘 별로 참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많이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는 영화를 시작하면서 단순히 `화내지 말자`가 아니라 "화 내는 느낌조차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화내는 모습을 안 보여도 태도나 눈빛에서 알 수가 있거든요. 그래도 스태프 한 두 명은 미울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조차 많이 삭히려고 했지요."
스스로도 `참아 본 적이 없다`는 박중훈이 겸손해진 계기는 무엇일까. "한 마흔 살쯤 됐을까요? 내가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핫(Hot)하지는 않았고요. 결혼한 지도 십수년 되고. 애들도 크니까 뭔가 자각 같은 게 오더군요. 20대와 30대는 그저 성취하기 위해 살아왔는데, 성취를 어느 정도 이루고 나니 이제 앞이 아니라 옆이 보인다고 할까요. 성취 자체가 행복을 주는 건 아니더군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주는 것 뿐이지."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
그는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서도 특유의 입담으로 조언했다. "사람한테는 지성과 야성의 매력이 있어요. 지성은 생각하고 개발하는 것이고, 야성은 주어지는 것이죠. 20대 때는 남녀를 불문하고 야성의 매력이 더 돋보여요. 멋진 지성을 가진 20대 남자가 있어도, 잘 생긴 야성의 매력이 있는 20대 남자한테 밀리죠. 그렇지만 30대 때부터는 야성의 매력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하고, 그 공간을 다른 매력으로 메우지 않으면 점점...더 매력이 떨어져요."
30대 중반쯤 되니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는 멈추지 않고 설명했다. "특정 인물을 거론하면 안 되니까 말을 안 하겠지만, 20대 30대 때는 굉장히 매력 있다가 현저히 매력이 떨어진 배우들이 있잖아요. 전형적으로 타고난 야성 외에 지성을 키우려는 노력을 덜 한 거죠. 반면 늦게 빛을 보는 배우는 지성에 대한 성찰을 많이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박중훈 본인은 어떨까. "저는 20대 때 마치 뾰족한 화강암 같았어요. 그런 뾰족한 화강암은 쥐었을 때 손에 상처를 주죠. 하지만 그걸로 뭔가를 격파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끼 낀 차돌멩이처럼 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잡으면 둥글둥글한데 뭔가를 치면 격파할 수 있어요. 제가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이끼 낀 돌처럼 부드러움이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뭉실뭉실한 돌멩이가 뾰족한 것보다 약한 게 결코 아니거든요."
초반에 말했다. 감독 박중훈이 둥글어졌다고. 그는 이미 1~2년보다도 훨씬 더 둥글둥글해져 있었다. 그런 그가 원하는 대로 나이들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저절로 동의하게 되었다.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