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what-정경호의 벼랑 끝 소통이야기] 이순신 장군과 창의적 소통리더십

입력 2013-11-12 09:30   수정 2013-11-19 07:14

역사적으로 이순신 장군은 모든 군사를 소통에 참여시켜 일방적인 군대식 지휘 체계에서 벗어나 혼연일체와 화합의 군대로 만든 소통리더십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하급 졸병(卒兵)이라도 병법과 관련하여 자유롭게 말하게 하였던 이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든든한 지원자였던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과 부하들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건물을 세웠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밤낮으로 장수들과 함께 전투를 연구하였는데, 아무리 지위가 낮은 병사라도 군대에 관한 일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모든 병사가 군대에 관련된 일을 잘 알게 되었다. 또한 이순신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장수들과 의논하여 계책을 결정하였으므로 전투에서 패하는 일이 없었다.


16세기 이순신 장군은 창의적 소통의 뛰어난 리더였다. 제작한 여러 무기와 작은 아이디어 하나도 모두가 이순신 장군과 부하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적 소통을 통해 발견한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거북선으로, 사실 거북선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13년 태종 때이지만, 180년 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다시 태어난 거북선은 구조나 성능이 한결 발전한 것이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을 도와 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힘쓴 나대용 장군은 28세 때 병과로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선조 24)에 전라좌수영 수사로 있는 이순신 장군에게 찾아가 자신이 연구한 거북선 설계도를 보이는 한편 국방을 튼튼히 할 방법에 대한 의견도 보고했다.


이순신 장군은 크게 기뻐하여 그를 가까이 두고 거북선 건조를 비롯한 모든 전투 장비를 준비하는 일과 작전 추진에 참여시켰다. 그는 거북선 건조에 온 힘을 기울이는 한편, 이순신과 함께 옥포, 당포, 사천 등 15여 회 해전에서 왜적과 왜선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후에도 새 전함인 창선(?船)을 만들어 건조하였고, 남해현감(南海縣監)으로 있을 때는 쾌속정인 해추선(海?船)을 발명하였다.


이순신 장군과 나대용 장군의 놀라운 창의적 소통이 없었다면 거북선도 없었을 것이며 그렇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창의적 소통은 약점을 강점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놀라운 힘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창의적 소통으로 끊임없이 부하들과 노력하고 도전하여,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구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켜내 세계 역사를 바꾼 주인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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