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人]치코 이봉수 대표 "유행은 만들고, 클래식은 사수한다"

입력 2014-01-16 11:03  

출산율은 낮아졌지만, 그만큼 태어나는 아이는 귀하다. 귀한 아이들에게 좋은 물건만을 쓰게 하겠다는 생각은 엄마들 사이에서 점점 더해 가고 있다.

아기를 처음 가진 엄마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선배 엄마들의 `출산용품 리스트`를 받는 것일 정도다. 이런 식으로 유아용품의 세계에 입문한 엄마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브랜드 `치코`의 이봉수 대표를 만났다. 이탈리아 종합 유아용품 브랜드인 치코는 2000년 유아 화장품으로 처음 한국 시장에 선보인 이래, 14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오고 있다.


치코를 처음 한국에 들여온 주인공이자, 그 시간 동안 유아용품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봉수 대표에게 한국 유아용품 시장 전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세계 최고인 것만 같은 한국 부모들이 미처 잘 모르는 `약점`에 대해 따끔한 일침도 있었다.

★한국 유아용품 시장, 조만간 정체된다

유아용품 시장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그 수많은 브랜드에 일단 압도당하게 된다. 가까운 일본부터 시작해 미국, 유럽 시장 또한 굳건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 반격하는 국산 브랜드들도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레드 오션`이다. 이러한 전쟁터에서 14년째 살고 있는 이봉수 대표는 "한국 유아용품 시장은 성장기를 이미 지났다"고 평가했다.

"성숙기 중에서도 중기, 말기라고 볼 수 있죠. 조만간 성장이 정체될 겁니다. 이유는 우선 출산율 저하가 있어요. 아이들이 별로 없으니 일단 성장을 못하는 거죠. 두 번째 이유는 유아용품뿐 아니라 전반적인 소비 트렌드가 선진화된 거예요. 합리적으로 따져 보고 사기 때문에 수많은 브랜드가 그저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시장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브랜드가 각축전을 벌이는 현장이다. 그야말로 수많은 브랜드 경쟁의 최고점을 찍고 있다는 이야기.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서 유아용품 시장 성장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쟁은 가장 치열한 시기지요. 브랜드로서는 너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 뭐든 짜내야 하는 때입니다." 레드 오션에서 살아남을 몇몇 승자는 과연 누구일지가 궁금해졌다.


★트렌드의 선구자 & 클래식의 수호자

치코 역시 `전쟁터`에서 분투하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다. 치코뿐 아니라 수많은 유아용품 브랜드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깊이 새겨야 하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물론 듣는다고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봉수 대표는 단호히 말했다. "트렌드는 선도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전통은 지켜야 합니다." 어찌 보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이야기다.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건, 기존에 한국 시장에는 없었던 아이템을 가장 먼저 선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후발 주자들이 그 아이템을 따라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독보적으로 많이 판매를 할 수 있으니까요. 완전히 새로운 걸 꼭 내놓으란 얘기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스터나 바운서 등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가격과 기능별로 세분화해서 처음 내놓은 건 저희였습니다. 유아용 식탁의자 같은 경우도 나무로 된 투박한 제품만 많았는데,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으로 된 가볍고 컬러풀한 것들을 처음 내놨고요. 많이 팔았죠(웃음). 그런 식으로 트렌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예 새로운 아이템을 내놓는 것보다 `업그레이드`가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중, 이봉수 대표가 `전통`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클래식한 면을 버려선 안돼요. 치코의 경우 장난감, 유모차, 유리젖병과 고무젖꼭지 등에서 그런 클래식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모차의 경우 유행을 따르지 않고 전통적인 프레임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죠. 아기가 붕 떠 있는 형태의 최신형 유모차는 엄마들한텐 유혹적이지만 과연 아기가 편할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봉수 대표는 `안전`과 `아이의 편안함`이라는 기본적인 가치에 별 관심이 없는 일부 한국 부모들에게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유럽에선 불편해도 70~80%가 유리젖병이나 고무젖꼭지를 써요. 일본에서는 50%가 쓰고요. 아이에게 가장 좋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들 플라스틱 젖병, 실리콘 젖꼭지를 쓰죠. 한국 엄마들이 아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세계 1위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아요. 아이의 안전보다 본인의 편리함과 유행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꼭 어느 브랜드를 써야 한다기보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지식을 쌓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국제무역 전문가를 꿈꾸는 젊음에게, "미쳤다 소리 들어도..."

이봉수 대표는 지금도 이탈리아 현지를 옆집처럼 오가며 치코 본사와 직접 교류한다. 유럽의 최신 트렌드를 접하며, 한국에서 어떤 것이 통할지 고민한다. 유아용품 업계가 아니더라도 국제무역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미래의 국제무역 전문가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했다.

"첫 직장은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였어요. 원래 국제부에 가고 싶었는데, 기획부에서만 3년을 있었죠. 그래서 연봉과 복지를 팍 줄여서 나드리화장품 수출팀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훨씬 재미있더군요. 거기서 일을 또 3년 배웠어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눈앞의 이익을 과감히 놓아버리는 뚝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후에 나드리화장품 비서실에서 또 3년 정도 근무하면서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외국 브랜드를 들여오는 일을 주로 익혔죠. 그리고 회사 생활 10년 만에 직접 사업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한국 에이전시를 설립해서 외국 화장품을 들여와 국내 업체에 연결해 주는 일을 하게 됐죠. 미국 레블론 화장품이 그 때 들여온 대표적인 브랜드예요."


그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치코를 처음 접한 건 1999년이었어요. 한국 진출을 시키려고 에이전트 계약을 했는데, 아가방이나 LG 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쟁쟁한 화장품 회사들이 다들 안 한다고 했어요. 당시 유아 화장품 시장은 전체의 2%도 안됐고, 유아용품 브랜드에선 굳이 해외의 경쟁 브랜드를 들여올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직접 치코를 한국에 들여온 이봉수 대표는 처음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화장품만 들여왔는데, 누크-존슨즈베이비가 시장을 양분할 때였어요. 그 브랜드들 로션이 4000원 할 때 치코 로션은 1만2000원부터 시작했어요. 다들 `그래 가지고 팔리겠냐`고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아기들 화장품이 엄마들 화장품에 비해 진짜 쌌거든요. 사실 엄마들이 본인보다 아기를 더 생각하기도 하는데, 굳이 그렇게 싼 것만 쓰겠냐는 생각이었어요. 내친 김에 아기 화장품도 피부 타입별, 계절별로 나눠서 내놓았는데, 그때까지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신기하다는 반응과 함께 인기를 얻었죠."

결과는 적중했고, 치코 화장품의 성공은 이후에 치코가 장난감, 수유-이유용품, 유모차 등 다양한 용품을 들여오는 데 든든한 발판이 됐다.

"고가 시장은 절대 안 먹힐 거라는 생각을 했다면 들여올 수 없었을 거예요. 치코가 들어온 이후로 유아 화장품 시장에도 고가 브랜드들이 형성됐고, 오가닉(유기농) 제품 바람도 불기 시작했어요. 미쳤다는 말을 들어도, 아까 말한 트렌드를 선도해야 한다는 게 이런 말이죠." 문득 "너무 자랑만 했나"라며 겸연쩍어하던 이봉수 대표는 뚝심 뒤에 숨은 따뜻한 마음을 드러내듯 눈웃음을 지었다.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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