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산재보험 가입이 개인의 자유?" 억지가 통하는 사회

이근형 기자

입력 2014-04-23 14:16  

보험설계사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또다시 무산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22일 보험설계사 등 6개 특고 종사자(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래미콘 기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에 대해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의결하는 데 실패했다.


설계사가 주로 서류업무를 보는 만큼 산재보험에 가입을 해도 그리 실효성이 없고, 민간보험을 선택할지 공적보험에 가입할 지 개인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일견 찬반이 첨예하게 갈릴만한 사안처럼 보이지만, 상황을 바로보면 그저 상식이 뒤집힌 사례다.


우선 산재보험 가입은 이미 모든 직종에서 의무화 돼 있다는 점이 그렇다. 사무관리직 종사자라고 해서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의무가입을 예외로 한다면 이미 산재보험에 가입한 사무관리직 종사자 모두에게도 똑같이 예외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둘째, 산재보험은 우리나라 4대 사회보장보험 중 하나로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연금, 고용보험,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산재보험 역시 가입이 의무화돼 있는 것은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최저생계와 의료를 보장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같은 사회보장성 공적보험을 민간보험과 동등하게 놓고 본 전례는 없다. 산재보험의 보상규모는 민간보험사들의 그것보다 20배 가까이 많고 보장범위도 훨씬 넓다. 민간과 공공, 어느 보험을 선택할 지 개인이 선택하게 할 경우 근로자가 자칫 사업주의 설득에 따라 가입비가 더 싼 보험에 가입해 최저수준의 산재보상 조차 받기 힘들어질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면 회사가 보험료 비용부담이 늘어 설계사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로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인건비의 0.3% 수준에 불과하다. 설계사 한명당 연간 15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인데 이 때문에 인력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사위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기각시키면서 특고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에 일부 예외조항을 만들 것을 요청하고 있다. 민간산재보험에 가입한 경우 공적산재보험에 반드시 가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조항을 만들라는 얘기다.


우리는 유독 이같은 반발의 목소리가 보험업권을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명한 사실이지만, 산재보험 가입에 개인의 선택권을 부여하게 되면 최대 수혜자는 민간 산재보험을 만들어 팔 수 있는 보험사다.



사회보장제도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소득을 지켜주는 마지노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권리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국민의 기본권이 업계와 일부 종사자의 이익논리에 좌우된다니 어불성설이다.


아직 4월 임시국회에서 법사위 일정이 더 남아있기는 하지만 관련논의가 재개될 지는 미지수다. 이번 회기를 넘기면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개정안은 또다시 장기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뒤숭숭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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