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 브라더스’ 속 이범수는 오래전 얘기다. 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한 이래 드라마는 물론, 스크린까지 접수하면서 그야말로 쉬지 않고 연기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담을 자아내며 웃음을 주는 것은 물론, 작품 속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냉철함까지 보여주는 이범수다.
그런 이범수가 영화 ‘짝패’ 이후 9년 만에 악역으로 돌아왔다. 바로 ‘신의 한 수’를 통해서 말이다. 사람 한 명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 잔인한 살수 역을 맡은 그는 ‘신의 한 수’를 통해 정우성과 액션 연기를 펼치며 무서울 만큼 잔인한 내기바둑판의 1인자였다. 최근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난 이범수는 살수의 잔인한 모습보다 천상 ‘배우’였다.
“‘신의 한 수’ 시나리오 처음 읽는 순간, 잊지 못해”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이범수는 완벽한 악역이다. 나빠도 너무 나빴고, 잔인하다 못해 무서웠다. 특히 9년 만에 악역으로 돌아온 이범수는 그동안의 이미지를 벗고 살수로 완벽 변신에 성공했다. 그는 “‘신의 한 수’ 시나리오 받았을 때 첫 느낌을 생생히 기억해요. 작년 초 여름인데, 바둑을 소재로 액션을 만든다고 해서 ‘이거 뭐지?’ 싶었죠. 책을 자꾸 넘기고, 첫 페이지를 읽고 한 장씩 넘기는데 ‘야 이거 이야기가 되겠다’ 싶었죠. 책이 막 넘어가고 흥이 나더라고요. 바둑소재인데 도박, 노름, 사기를 통해 먹고 먹히는 매정한 세계의 이야기잖아요. 이거 참 흥미롭더라고요”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던 것일까. 이범수는 ‘신의 한 수’에서 악역으로 대변신했고 연기 역시 완벽했다. 머리는 올백으로 깔끔했지만 무테안경 덕분에 차갑고 냉혈한 모습이었다. 그는 “살수는 말이 많은 인물이 아니잖아요.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보이고 싶어서 스타일도 일부러 그렇게 잡았어요. 타이도 안 메고 셔츠만 입고 나오잖아요. 행동, 간결한 처리 등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었죠. 사람을 죽일 때도 무지막지하게 죽이기보다 간결하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생명을 처리한다는 냉정함으로 살수 캐릭터를 완성해 하고 싶었죠”
“오랜만에 만난 정우성, 한결 같고 신뢰 가는 배우죠”
그렇게 해서 이범수는 9년 만에 악역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악역을 선보인다는 뜻 깊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14년 만에 정우성이라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게 된 것 역시 이범수에게 기쁨이었다.
“우정 씨나 나나 서로 좋아해요. 반가운 동료 배우죠. 98년 처음 만나서 2000년도 영화 ‘러브’를 같이 촬영했어요. 오랜만에 작품으로 만났는데 참 든든해요. 한결 같고 신뢰가 가요. 우성 씨는 책임감이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 배우에요. 그러다가도 서로 액션신을 찍게 되면 긴장을 하곤 하죠.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도 있고 그만큼 연습도 많이 했기 때문에 완벽한 액션신이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어느새 데뷔 25주년을 맞이한 이범수는 그야말로 쉼 없이 달렸다. 그만큼 굵직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는 배우가 됐다. ‘신의 한수’ 개봉을 하는 시점에도 그는 MBC ‘트라이앵글’ 주연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만큼 연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어느 순간 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1-2년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행복한가? 내 삶에 최선을 다하나?’ ‘신의 한 수’를 끝으로 제가 배우 생활을 못 한다고 해도 전 여한이 없을 거 같아요. 그만큼 최선을 다했거든요. 형편이 넉넉하든 빈곤하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오히려 당당하고 과감하게 연기했던 거 같아요. 참 배우로서 행복해요”
“물론 드라마는 시간이 촉박해서 연기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요. 휘몰아 치지 않고 5분만 주변에서 여유를 줬다면 조금 다르게 승화 시켰을 텐데 말이죠. 그 상황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고수의 표현이 나왔을 텐데’ 라고 안타까워 할 때도 있죠”
이범수가 말하는 영화 ‘신의 한 수’
바둑과 액션의 조화. 잔혹한 내기바둑의 세계를 보여준 ‘신의 한수’에서 가장 잔인한 살수 역을 맡은 이범수는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범수가 바라본 ‘신의 한 수’는 어떤 작품이냐는 질문에 그는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할 수도 있는데 그냥 지친 군생활에 시원하게 위문 공완 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경쾌하고 신나게 어울려서 노는 작품인 거 같아요. 그런 순간이 관객에게 온다면 정말 감사하고 기쁠 거 같아요. 영화라는 게 보는 관객 한 분 한 분에게 철학에 미치고자 하는 것도 있으면 좋지만 항상 계몽할 순 없잖아요. 올 여름 시원한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진=민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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