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손예진(33)을 청순하다고만 단정 짓는가. 30대 여배우 손예진은 신인 액션배우로 다시 거듭났다.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스크린 속 손예진의 몸놀림은 제 옷을 입은 듯 한껏 가볍기만 하다. 그동안 대중들이 바라고 원하던 모습과 기대치 속에서 그 무게를 벗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최고의 멀티캐스팅으로 일컬어지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본인의 몫 그 이상을 해내며 다시 한 번 진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손예진. 그녀에게 ‘해적’은 어떤 의미의 영화일까.
◆ 손예진은 왜 해적단 여두목이 됐나
사극에 액션에,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은 해적 소재다. 그야말로 총체적난국 속에서 손예진 또한 ‘해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고민이 만만치 않았다고. “본적도 없는 캐릭터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캐릭터지 않나. 새롭고 독특한 매력에 끌렸고 놓치기엔 아깝더라. 그래서 욕심을 냈다” 손예진은 “정말 멋지고 예쁘지만 힘들고, 별다른 매력을 못 느껴서 계속 기피하기만 했다”고 밝혔으나 “시간이 지나고서 ‘내가 굳이 좋은 작품을 안 할 이유가 있나’는 생각이 들더라. 다행이 마침 ‘해적’이라는 좋은 작품이 나타난 거다”라며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한국에서는 거의 최초로 시도되는 여자 해적이기에 여월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에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손예진은 “사실 감정적인 내면 연기보다는 비주얼적인 면모가 강한 캐릭터가 여월이다. 스모키 화장이나 의상 등이 중요했다. 그러나 남자들을 호령하는 카리스마도 필요했다. 카리스마를 보인다고 눈만 크게 뜨면 그게 얼마나 단선적인 연기겠나.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여배우로서 익숙해진 눈빛이나 동작을 없애는 것도 힘들었다”고 전했다.
극중 산적단이 마음 놓고 웃기고 해적단이 여기에 리액션을 하며 코믹요소를 만들어가는 반면, 손예진의 여월은 시종일관 극의 중심과 밸런스를 잡아주는 인물. 이에 손예진은 “코믹 본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웃기고 싶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의롭고 진지한 역할이지 않나. 후반부에 코믹해지는 부분이 등장해 만족했지만, 욕심을 내면 안 되는 부분이다. 산적단이 그걸 잘 해주었다. 웃기는 데에는 성공했다. 코믹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있다”
가장 우려이자 기대를 낳았던 고래CG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손예진은 “걱정했던 부분이다. 실존했던 귀신고래 모양을 본 따서 만들었는데 디테일을 살리는 데에 고생을 많이 했다. 고래가 가짜 같은 순간 퀄리티가 떨어져 버리니, 직접 교감하는 나로서는 걱정이 되더라. 그런데 정말 BBC에서나 나오는 다큐멘터리 고래가 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지금도 개봉 전까지 계속 후반 작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 손예진, “김남길과 호흡이 잘 맞아? 다 끝난 뒤 깨달아”
영화 ‘해적’은 그야말로 화려한 면면의 배우들로 이루어진 멀티캐스팅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출연진 대부분 내공이 탄탄히 쌓인 명배우라는 점에서, ‘해적’의 기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손예진 또한 멀티캐스팅 영화에 대한 견해를 털어놓았다. “예전에 ‘타워’라는 영화를 결정했을 때, 인물에 감정이 집중되는 캐릭터를 고집해온 것이 힘들었고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홍이 너무 버거워서 선택을 하게 된 거다. 많은 배우들에게 힘을 얻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적’도 마찬가지다. 많은 배우들이 나오고 책임감도 나눠가질 수 있어 좋더라”
그중에서도 김남길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열애설이 날 정도로 전작 ‘상어’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던 두 사람이기도 하지 않나. 손예진은 “‘상어’ 촬영이 너무 촉박해서 그런지 몰라도 호흡이 좋았다, 잘 맞았다는 것은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러데 이번에는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우리가 잘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뒷부분의 러브라인이 사실 촬영 초반에 찍은 것들인데 만약 새로운 남자배우였다면 그렇게 안 나왔을 것 같다. 사실 현장은 그리 웃기지 않았는데 관객들이 생각 외로 많이 웃으시더라. 그런 호흡과 유쾌함, 디테일함을 오빠와 함께였기에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산적과 해적을 오가며 오작교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철봉 역의 유해진 배우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손예진은 “다작을 통해 이미 노하우가 쌓여 있다. 지금까지 코믹적인 명장면이 얼마나 많나. 그러데도 답습하지 않고 고민하는 배우다. 일단 대중들이 기대를 하는 배우인데 얼마나 부담이 되겠나. 그래서 베테랑인 거다”라며 존경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손예진 “연기는 애증,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손예진 앞에 붙는 수식어 중 ‘청순함’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 손예진의 대표수식어이기도 한 청순함에 대해 손예진은 “사실 그 시절에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캐릭터가 여주인공인 공식이 있지 않았나. 물론 그때는 이를 탈피하고 싶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갈망이 있었는데 이제와 내가 이 이미지를 깨기엔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다. 청순함을 일부러 깨려고 하지도 않았고 깬다고 해도 깨지는 것도 아니더라. 결국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다”라고 소신 있는 발언을 이었다.
손예진의 이러한 ‘내려놓음’은 30대가 큰 기점이 된 듯 보인다. 손예진은 자신의 20대를 예민함이라고 표현했다. “연기도, 사회생활도, 사람들의 시선도 처음이었고 뭐든 낯설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은 많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 20대 중반까지는 스스로를 들들 볶는 부정론자였는데 지금은 여유로워졌다. 10년 일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도 생겼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성숙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예전보다는 단단해지고 여유로워졌다”
손예진은 “사실 최근에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고 다소 놀라운 고백을 털어놓았다. 그는 “‘상어’ 이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매너리즘, 슬럼프에 빠졌다. 이 가운데 ‘해적’을 만났다. 물론 ‘해적’ 촬영 때도 많이 힘들었지만 개봉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하고 기대해주시니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 내게 어떤 열정이 또 다시 꿈틀거리더라. 연기가 내게는 애증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 같다. 사실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게 근래에 처음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는데 내게 아직 열정이 남아 있더라. 내 부족함을 깨닫고 한계에 부딪히고 싶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손예진은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다소 평범하고 소박한 목표를 전했다. 뻔한 대답 같지만 사실 가장 힘든 목표라는 것을 손예진은 알고 있었다. “배우는 연기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항상 내 연기, 내 어떤 무언가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고 나는 앞으로도 좋은 배우가 되길 원한다”
[사진= 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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