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로부터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적 경고’를 받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징계 수위를 높이기 위해 실무 부서에 법적 검토를 지시한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창진 금감원 법무실장은 “일부 언론보도와는 달리 최수현 원장이 KB 주전산기 교체 문제와 관련해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징계수위가 적정한 지 법적 검토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한 징계결정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던 최수현 원장이 자존심상 두 사람 모두를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낮춰준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뿐, 실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등 KB 주요 경영진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의 징계 결정이 나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상대편 임원들을 감찰에 고발하는 등 내부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둘러 경징계를 확정해 주는 건 나무 모양이 빠진다는 것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제재심의 절차상 하자도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입니다.
김준현 금감원 제재심의실 국장은 10시30분부터 30분간의 속기록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정회를 선언하고 회의를 속개하기 전까지 속기록을 작성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기에는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KB에 대한 조사를 담당했던 은행검사국 직원들을 비롯해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금감원 직원들도 제재심의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제재심의위원회가 비록 금감원과 독립적인 기구이긴 하지만, 금감원장과 검사국의 강력한 제재 의지를 꺾고 두 사람 모두에게 사실상 별다른 제재 효과가 없는 ‘주의적 경고’로 징계 수위를 낮춰 준 것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최수현 원장으로서는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쉽게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현행법상 금감원장은 제재심의 결과를 참고는 하되, 그 결과에 구속되지 않고 얼마든지 수정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감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은 사례가 없고, 특히 금융지주 수장인 임영록 회장의 경우는 징계 수위를 `문책경고‘로 높일 경우 금융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한 만큼, 거부권 행사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입니다.
현재로선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징계안에 대한 서명을 최대한 미룸으로써,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최수현 원장이 꺼내들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