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B 끝나지 않은 위기‥'추스르기'· '바로잡기' 무엇이 우선?

김정필 부장

입력 2014-08-29 17:47   수정 2014-08-29 18:12

지난 8월22일만 보면 KB사태는 분명 진정되는 양상이었습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에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한 제재가 경징계로 낮아진 날이자, 이날 오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템플스테이 행사를 통해 화합 모드로의 변화마저 예상됐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전산교체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김재열 전무(CIO)가 표면상 건강문제로 동행하지 않은 것을 빼면 계열사 전 임원들이 각각 지주가 위치한 명동과 은행이 자리잡은 여의도에서 2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화합을 위한 장소인 백련사로 향할 때만 해도 순탄해 보였습니다.

가평에 자리잡은 고요한 사찰에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계열사 임원들이 미소를 띤 채 두 손을 교차해 잡고 기념촬영에 나서자 그간 모든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출발점이 될성 싶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KB금융은 그동안 써보기가 쉽지 않았던 한(恨) 이라도 풀려는 듯 ‘소통, 화합, 상생, 나눔 실천’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자료를 배포하며 재도약을 위한 사찰 회동을 알리기에 분주했습니다.

이것도 잠시, 며칠 지나지 않아 23일에 배포된 자료는 진실한 마음없이 입으로만 외치는 헛된 염불, 즉 `공염불`(空念佛)이 되고 맙니다.

주지 스님과의 대화 이후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백련사 마당은 예우 문제 등으로 이건호 행장이 부행장들과 계열사 사장들의 만류에도, 임영록 회장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템플스테이 현장을 떠나며 다시 갈등의 시작으로 묘사되는 양상입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호 행장이 김재열 KB금융 전무와 문윤호 KB금융 IT기획부장, 조근철 국민은행 IT본부장 등 전산교체 관련 임원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KB금융지주를 포함해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일을 이건호 행장의 `독단`, `마이웨이`, `돌출행동`으로 표현하며 갈등 봉합의 기회를 차버린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장과 행장 모두 징계 수위가 낮춰져 지배구조 변화 우려 등이 사라졌으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조직 추스르기가 급선무인 데 되레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얀마에 출장중인 이건호 행장은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이번 사안을 갈등으로 보니까 그렇지 이번 문제는 처음부터 범죄행위에 대한 단죄를 어떻게 해 바로잡느냐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번 고발은 본인의 징계와 무관하고 템플스테이와도 상관이 없고 지난 5월 이후 줄곧 강조해 왔던 사안"이라며 "KB금융과 주변에서 이번 사안을 정치적 문제, 파워게임으로 몰고 가고 있지만 범죄 행위가 드러난 마당에 덮고 갈 수 있겠냐"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이건호 행장은 템플스테이와 전산 내홍과 관련해 “지주와 은행간에 회장과 행장간에 갈등이 있을 것이 없다”며 “다만 전산교체라는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고발한 것 밖에는 없다”며 범죄행위를 덮고 갈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주와 사전 협의 없이 독단적인 행동을 해 조직에 누를 끼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행장은 “범죄 행위가 명확한 데 지주와 의논을 해서 만일 지주 측에서 검찰에 고발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행장은 “행장 입장에서 범죄행위가 명확해 관련자를 고발했는 데 자꾸 정치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도 문제고 이렇게 하려는 사람들은 결국 그 범죄 행위를 덮고 가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건호 행장은 `타겟이 임영록 회장 아니냐`,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회장과의 갈등도 아니고, 또 다른 의혹이 아닌 본질적인 문제의 조직 바로잡기 일환”이라고 의혹을 일축했습니다.

이건호 행장은 “결국 검찰 고발건은 사법당국이 판단할 문제"라며 "은행 사외이사들과 논의해서 경영을 할 것이고 지주와 은행, 임영록 회장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임영록 회장으로부터는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의견을 듣지 못한 가운데 KB금융 측은 이번 사안과 임영록 회장이 연계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며 거리를 두는 입장입니다.

아직 금감원에서 최수현 원장의 최종 결제가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분과 갈등, 징계 등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입니다.

KB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임영록 회장이 임원 회의 등을 통해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최대한 수습하는 데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며 “그 외 이건호 행장의 검찰 고발, 템플스테이 관련 논란 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관련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학계와 금융권 안팎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조직 추스르기’에 역점을 두는 것도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바로잡기’가 맞지 않겠냐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임영록 회장과 KB금융이 강조하고 있는 추락한 그룹위상 확립, 신뢰 회복, 경쟁사들에게 뒤처지거나 따라잡히고 있는 수익성·경쟁력 확보에 최우선을 두는 것도 일리는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호 행장의 ‘조직 바로잡기’ 행보 역시 길게 봤을 때, 항상 외풍에 흔들리고 파벌, 줄서기, 투서가 난무하는 등 각종 문제로 점철된 KB 전체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견해입니다.

한 경제 금융분야 교수는 “조직이 최악이지만 논란이 된다고 해서 근간을 뒤 흔드는 중대 범죄에 대한 고발을 폄하하고 깎아내려서는 안된다”며 “갈등 조장으로 몰고 가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전산교체와 관련해 고발된 임원들이 서류조작, 허위보고 등 부당한 행위를 해 고발을 했는 데 고발의 주체가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또 다른 교수 역시 “전산시스템 교체로 인한 사고 발생시 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데 서류조작, 허위보고 등의 범죄를 조직안정을 명분으로 옹호하고 덮고 가서는 KB가 언제든 다른 사고의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결국 도쿄지점 사태, 고객정보 유출, 주택기금 횡령, 영업점 사고 등 모든 것이 다 이같은 조직 안정, 단기적인 시각에서의 경영 성과를 우선한 것에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이건호 행장을 독불장군, 마이웨이, 돌출행동으로 몰아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낙인찍을 것이 아니라 내부 부정과, 불법 행위, 비리를 과감히 신고하고 중장기적으로 환골탈퇴 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로 봐야 한다”는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주택, 국민, 장기신용 등 출신을 따져 인사, 승진, 이익을 공유하려는 특성이 두드러지는 KB인 만큼 부당한 일을 바로잡는 행위를 되레 멍에와 굴레를 씌워 호도하려는 내부 세력을 경계해야 KB가 바로 설수 있는 근간을 그나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갈등 유발`, `또 다른 의도` , `든든한 배경을 믿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몰아가는 최근 분위기 역시 부정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에 대한 음해로 봐야할 정도로 KB 내부갈등이 고질병 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제재심 최대 이슈였던 주전산시스템 교체 관련 징계의 경우 경징계로 가닥이 잡혔지만 현재 최종 결제자인 최수현 금감원장은 최종 확정 결제를 보류중인 상황입니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갈등과 정치적 문제, 지주와 은행, 경영진간 파워게임으로만 치부할 것인 지, 아니면 신뢰회복, 위상 복원, 바로서기의 출발점으로 볼 것인 지, KB와 관련된 모든 사안은 안갯속을 걷는 듯,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단, KB가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 만큼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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