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조로’가 2011년 초연 후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 공연은 리부트(전작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시리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것)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화려하고 정열적인 플라멩코,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은 그대로지만 조금 더 가벼워지고 즐거워졌다.
영웅 ‘조로’가 사라진 시대. 집시킹 ‘이네즈’는 광산 강제 노역 중 탈출하다 총을 맞은 ‘디에고’를 구한다. 그녀는 그에게 ‘조로’가 될 것을 건의한다. 한편, 캘리포니아 시장이었던 ‘알레한드로’는 총독 취임식에서 딸 ‘루이사’와 ‘라몬’의 결혼을 발표한다. ‘라몬’은 ‘루이사’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사람들을 착취할 생각에만 몰두한다. ‘라몬’에서 복수하기 위해 ‘조로’가 되기로 결심한 ‘디에고’는 스승 ‘가르시아’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조로’는 ‘존스턴 매컬 리’가 1919년에 쓴 소설 속 등장인물이다. ‘조로’라는 이름은 귀족 ‘디에고’의 가명이다. 그는 검은 망토와 가면을 쓰고 홀연 듯 나타나 독재자와 악당들로부터 소탕하는 영웅으로, 전형적인 ‘민중 영웅’ 캐릭터로 사랑 받았다. 이후 슈퍼히어로들의 탄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뮤지컬 ‘조로’는 특별하지 않은 한 남자가 영웅이 되는 과정을 담는다. 하지만 작품은 ‘디에고’가 영웅 ‘조로’가 되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조로’를 통해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깨닫는 시점을 주시한다. 메시지는 묵직하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단출하다. ‘디에고’의 고뇌는 살짝만 스쳐 지나고, 주제는 가볍게 터치되며, 메시지에 살짝 발만 담근다. 재미라는 토끼를 손에 쥔 채, 주제라는 토끼를 자유분방하게 풀어놓는 식이다.
‘액션 활극’의 재미도 쏠쏠하다. 시종일관 ‘챙챙’ 맞부딪히는 쇳소리는 액션의 쾌감을 더한다. 배우들의 액션합은 소리 내어 감탄할 정도다. 여기에 더해진 집시 여인들의 플라멩코는 흥에 겨워 거방지다. 특히, 커튼콜 음악 ‘밤볼레오’는 라틴의 정열을 뜨겁게 달궈 한국인의 ‘흥 본능’을 일깨우기에 적격이다.
‘조로’의 캐릭터는 한층 애교(?)스러워 졌다. 철부지 막내아들처럼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목욕하는 ‘루이사’를 훔쳐보며 수줍어하기도 한다. ‘아이언맨’으로 정점을 찍었던 익살꾸러기 영웅 캐릭터의 힘은 무대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했다. ‘유쾌한 영웅’의 재치는 세대를 넘어 함께하는 무대를 꾸미는 데에도 일조했다.
무대는 회전 테이블을 중심으로 사방을 모두 활용한다. 가로, 세로 경계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세트는 복잡하고 쉴 틈 없는 전환 사이에서 배우들의 입체적인 동선을 만들어내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다만 세트의 견고함이나 외관이 어설퍼 보이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대의 정점은 단연 ‘기차 위의 결투’ 장면이다. ‘라몬’과 ‘조로’의 마지막 대결은 하이라이트에 상응하는, 거대한 실물 모형의 기차가 등장한다. 무대 뒤에는 영상을 깔아 실제 달리는 듯한 입체감을 입혔다. 특히, 실물 모형의 기차는 무대 위를 자유롭게 회전하며 방향감, 속도감을 업그레이드시켜 관객의 쾌감을 극대화했다.
익숙한 이야기 구조의 헐거움은 배우들의 호연으로 이겨낸다. ‘조로’ 역의 김우형은 초반부 불안한 노래로 출발했지만, 강인한 뒷심으로 ‘역시’라는 박수를 보내게 만들었다. 그의 숙적 ‘라몬’ 역의 박성환은 진보한 연기로 ‘포텐’을 터트렸고, ‘이네즈’ 역의 서지영은 노련미로 ‘조로’의 역사를 매만졌다. ‘가르시아’ 역의 서영주는 믿는 만큼 돌려주는 배우로 관객을 미소 짓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