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실’…연극 ‘래빗홀’

입력 2014-09-01 15:29   수정 2014-09-04 11:45



연극 ‘래빗홀’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모든 것이 뒤바뀐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래빗홀’의 비유적 의미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작된다. 동화에서 ‘앨리스’는 ‘래빗홀’(토끼굴)로 빠져 들어가 현실과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이후 ‘래빗홀’은 ‘미지의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작품은 2006년 극작가 데이비드 린제이에 의해 연극화됐다. 이후 2011년에는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이 영화로도 제작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공연은 연극 ‘가을 반딧불이’, ‘겨울 선인장’, ‘아시안 스위트’ 등을 선보인 김제훈 연출이 진두지휘한다. ‘베카’ 역은 이항나가 맡는다. ‘베카’의 엄마 ‘냇’ 역은 강애심이 연기한다. ‘베카’의 남편 ‘하위’ 역은 송영근이 분한다. ‘베카’의 동생 ‘이지’ 역은 전수아가 열연한다. 가해자 17세 소년 ‘제이슨’ 역은 김지용과 이기현이 함께한다.

연극 ‘래빗홀’은 교외 조용한 주택가에 살고 있는 ‘베카’와 ‘하위’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8개월 전 사랑하는 아들 ‘대니’를 사고로 잃었다. 부부는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아들을 잃은 후 자꾸만 어긋난다. 남편 ‘하위’는 아들의 흔적을 지키려고 애를 쓰지만 아내 ‘베카’는 반대로 아들의 흔적을 지우려 노력한다. 두 사람은 같은 슬픔을 가졌지만 그 슬픔을 대처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다름은 갈등을 빚고 갈등은 오해를 싹 틔운다. 관계는 점점 더 불안해져 간다.

부부는 아들을 잃은 ‘상실’만으로도 힘들지만 새로운 일들이 계속 생겨난다. ‘베카’의 동생 ‘이지’는 임신 소식을 전하고, 아들을 죽게 한 가해자 학생에게서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제이슨’은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는 죽은 ‘대니’를 생각하며 공상과학 소설을 쓴다. ‘베카’는 소설을 읽고 ‘제이슨’을 만나기로 마음먹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실’

연극 ‘래빗홀’은 이들이 ‘상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그 과정에 집중한다. 부부는 자신의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바쁘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상실’에 슬퍼한다. 작품은 이러한 상황을 좋게 하기 위해 억지 부리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럽게 ‘상실’을 극복하고 이들이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대사는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데 좋은 도구로 활용된다. ‘베카’의 엄마 ‘냇’은 그런 점에서 훌륭한 도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자기 생각을 에둘러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예를 들어, 생뚱맞게 튀어나온 ‘케네디’ 일가의 이야기에는 그가 ‘베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냇’은 ‘케네디’ 일가의 죽음이 ‘저주’가 아니라 단지 ‘운’이 나빴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그는 ‘베카’에게 ‘대니’의 죽음도 그렇다고 위로하려 한다.

이야기는 진행될수록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짐을 풀어놓는다. ‘베카’는 그때 강아지를 풀어 놓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을 책망한다. ‘이지’는 그날 언니에게 전화해서 ‘대니’를 혼자 두게 한 것 같다며 미안해한다. ‘하위’ 역시 마찬가지다. ‘대니’를 친 가해자 학생은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어린 나이에 그는 살인자가 됐다. ‘제이슨’은 자신이 저지fms 잘못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자신이 과속했을 거라며 용서를 구한다.

연극 ‘래빗홀’은 가해자 학생의 잘못마저 용서한다. 결국 모두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이야기는 점철된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서로에게서 위로와 위안을 얻을 기회를 제공한다. ‘베카’는 ‘제이슨’의 소설을 읽고, ‘제이슨’은 ‘베카’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다. ‘상실’을 겪은 이들은 힘든 8개월을 꾸역꾸역 버텨낸다. 끝내는 다시 살아갈 힘을 서로에게서 얻는다.

전체적인 무대는 ‘베카’와 ‘하위’ 부부의 집을 옮겨 놓는다. 거실, 부엌, ‘대니’의 방은 위계질서를 갖춘 듯 층층이 나뉜다. 인물들이 ‘대니’ 방에 있을 때는 부엌과 거실 조명은 은근하게 반짝인다. 관객은 누군가의 집 안을 엿보는 착각에 빠져들고 인물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한다. 집 구조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가구로 깔끔하게 배치돼 있다. 공간과 공간 사이에는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탁 트인 집안은 ‘소통’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다.



다양한 연령대, 훌쩍훌쩍 관객반응

연극 ‘래빗홀’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공연장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로 가득했다. 여성과 남성 비율은 다른 공연보다 고른 편에 속한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삼삼오오 짝을 지은 관객들이 자리를 채웠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관객은 20대 후반 여성이었다. 이들은 특히 ‘베카’의 이야기가 공감하며 공연을 관람했다. 극 중 ‘베카’와 ‘냇’의 대화 장면에서는 ‘훌쩍’이는 관객이 다수 목격됐다.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관객은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작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인물은 ‘베카’, ‘냇’, ‘이지’ 등 세 사람이다. 여기에 ‘하위’와 ‘제이슨’이 합류해 이야기를 더 옹골차게 만든다. 20대·30대 남성들은 여성관객과 마찬가지로 ‘베카’와 ‘하위’ 부부가 느끼는 ‘상실’에 공감했다. 다른 점은 남성관객이 웃음에 더 열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극 초반 ‘이지’의 격한 육두문자에 박장대소했다. 남성관객은 웃을 때는 시원하게 웃고, 감정 몰입할 때는 집중해서 눈물 흘려주며 작품에 빠져들었다.

‘상실’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중 가늠하기 힘든 ‘상실’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일 것이다. 연극 ‘래빗홀’은 공연을 내내 ‘이들이 어떻게 이 슬픔에서 벗어나 삶을 살아갈까?’ 궁금을 더한다. 작품은 인물들의 관계로 그 답을 제시한다. 관객들은 ‘과연 가해자 학생의 방문으로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지’, ‘또 다른 나의 버전을 생각하며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현실의 우울, 슬픔, 힘듦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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