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케팅을 강화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통해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비긴 어게인`(사진 = 스틸컷) |
설마 싶더니 영화 `비긴 어게인`이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의미해석이 분분하다. 결과만 놓고보면 다른 박스오피스 영화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경제적 관점에서는 더 낫다. 제작비와 마케팅 홍보비용을 더 투입한 영화들의 체면이 구겨졌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손익 분기점이 30만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 `명량`보다 더 실속 있는 흥행 성과를 낳은 셈이다.
따라서 아트 버스터라는 말이 어울릴 수 있다. 다만 소규모 영화가 반드시 예술영화이고 대규모 영화가 비예술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인디버스터가 아닐까. 소규모 독립영화가 대형상업영화보다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비긴 어게인`을 독립 영화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에는 제작에 들인 공력이 일반상업영화의 범주를 벗어난다. 그러니 독립영화라 부르기가 적당하지 않아보인다. 다양성 영화라면 또 모를까.
어쨌든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비긴 어게인`이 흥행 성적을 보인 것은 입소문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마케팅을 강화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진 셈이다.
그러나 기대감이 크면, 실망이 큰 이른바 기대불일치 효과가 일어난다. 아트 버스터의 기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발견 심리다. 홍보나 마케팅이 별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판단을 통해 선택해 관람 영화에 대해 가치 평가를 후하게 하는 법이다.
일단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는 순간 그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깎이기 시작한다. 똑같은 감흥을 느껴도 기대치가 이미 높아졌기 때문에 평가 점수는 하향될 수 있다. 또한 남의 추천을 받는 경우, 그쪽 분야에 평소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더욱 평가 점수가 낮아질 수 있다.
한편, 입소문을 접한 사람 가운데 지나치게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선호하는 경우, 아트 버스터는 상대적으로 호응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영화 `비긴 어게인`도 마찬가지 사례에 해당된다. 일거에 낙관적인 장미빛 결말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저예산 영화에 음악이 좀 더 강화됐을 뿐, 할리우드 흥행 영화의 코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거꾸로 대중영화의 입지를 갖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결말이 우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미빛 성공 스토리로 맺어지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고, 자칫 황당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영화 `비긴 어게인`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한국적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있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은 희망을 말한다. 새롭게 시작하고 힘들고 고통받던 지난 일들을 지우고 다시 리셋한다. 그리고 보기좋게 성공까지 한다. 꿈같은 성공이자 멋진 복수극의 실현이다. 독립영화들이 주로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드러내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랐다. 예컨대, 루저들의 현실만 보여준다. 하지만 대중상업영화는 루저들의 세속적 성공도 보여준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흥행은 차별화되는 영화가 없는 점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아트 버스터의 기본 마케팅 심리 조건은 남과 다른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며, 특히 일반 상업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 `비긴 어게인`은 대진운이 좋은 면도 있었다. 장르적으로나 소재, 서사 내러티브 면에서 한국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들이 주로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입소문만으로 영화 `비긴 어게인`을 소비하는 것은 실망을 낳을 수 있고, 영화에 대한 평가를 부정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실적 필요에 따라 있는 그대로 선택하는 것이 그 가치를 온전히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아니 실험적인 시도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편안한 것은 무난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 한국 관객들은 영화콘텐츠에 목말라 하고 있다. 척박한 문화예술풍토에서 현실의 질곡을 벗우나 미래적 꿈을 모색할 수 있는 매개물을 활용하는데, 영화에 크게 의존하려 하니 더욱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쏠림의 궁극은 문화적 획일성으로 귀결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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