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의 존재감이 방점을 찍었다.
화사한 얼굴 뒤로 끝을 모르는 욕망을 품은 한 여인에게는 그동안 드라마를 통해 무수히 그려졌던 악녀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자신의 잇속을 위해서는 가족까지 내던지는 무시무시한 이 여인은 금세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악행으로만 점철된 연민정 캐릭터가 바로 그러하다.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억울하고 가슴 아픈 가족사로 인해 힘든 매일을 보내야했던 보리(오연서 분)에게 시청자들이 연민을 느낄 동안, 연민정은 내제된 폭발력을 서서히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사건과 갈등은 연민정으로 인해 시작됐다. 어딘가 헐거워 보이는 연민정의 꼼수에도 수많은 인물이 낚이고 괴로워했다. 때문에 드라마의 중후반부는 연민정이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연민정과 연민정을 연기한 이유리의 화학작용은 실로 대단했다. 연민정이 코너에 몰려 발악하고 괴로워할수록 이유리의 연기는 폭발했다. 서슬 퍼런 눈빛과 한 맺힌 오열은 보는 이들의 간담을 싸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뻔뻔한 얼굴로 악행을 저지른 채, 인간답게 살아가기 보다는 그저 살아가는 것을 택한 연민정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알 수 없는 시청자들의 묘한 연민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유리는 수없는 악행으로 인해 도저히 이해 불능한 역대급 악역 캐릭터를 구현, 시청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이해 가능케 하는 연민을 자아내며 시청자들을 견인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왔다 장보리’의 이유리 활용법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지난 12일 방송된 ‘왔다 장보리’ 마지막 회에서는 연민정이 죗값을 치른 뒤, 기억을 잃게 된 도혜옥(황영희 분)의 곁에서 국밥집 딸로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졌으나, 문지상(성혁 분)과 이비단(김지영 분)이 찾은 배 과수원에서 눈 밑에 점이 자리한 연민정 닮은꼴로 또 한 번 등장한 것. 이는 ‘아내의 유혹’(2008)을 패러디 한 것으로 시청자들의 적지 않은 즐거움을 주었다.
이유리는 ‘왔다 장보리’ 속 연민정을 통해 온몸으로 연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시청자들에게 톡톡히 각인시켰다. 그동안 수많은 악녀들이 시청자들의 복장을 터지게 했으나 드라마의 주역을 위협할 만한 존재감의 악녀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설득력 없는 전개를 이해시키는 김순옥표 막장드라마 스타일과 연민정을 다채롭게 소화한 이유리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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