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비정상회담’ ‘마녀사냥’ 토론, 예능을 적극 껴안아 지상파 이기다

입력 2014-10-20 09:54   수정 2014-10-21 09:54

▲ 엔터커션(Entercussion) 프로그램 중 하나인 JTBC ‘마녀사냥’은 지상파 방송에서 잘 다루지 않는 남녀 간의 연애와 성문제를 그린라이트라는 컨셉으로 다뤄 초기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사진 = JTBC)


몸에 좋은 것은 맛이 쓰다지만, 그래도 약간의 당의정을 입히면 좋다. 토론이 교육이나 교양의 함양을 위해 좋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때문인지 거리에는 토론전문 학원도 많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교육상 이런 토론학원에라도 보내야 할 듯싶다.

하지만 토론은 딱딱하기 쉽다. 딱딱하다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무겁기만 하니 사람을 축 처지게 만들고, 꾸벅꾸벅 머리가 무거워 졸게 만든다. 학교의 토론은 더 엄숙하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토론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러니 약간의 당의정을 입히면 좋을 법했다. 이런 당의점이 필요한 토론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스미디어다.

오래전부터 각 지상파 방송사마다 고정 프로그램이 있어왔고, 근래에 종편이나 케이블이 생기면서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토론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었다. 참고 보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인내력이 필요하다. 간혹 간신히 졸면서 끝까지 보았지만, 그나마 유용한 정보마저 없다면 분노가 일어난다. 후회의 감정도 일어 뒤척일 때도 있다. “그냥 잘 걸, 괜히 봤어.”

‘결정장애세대’에서 올리버 예게스는 “두 시간 이상 우리가 집중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축구 중계나 오락 프로그램 혹은 토크쇼뿐이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현대인들의 집중도는 많이 떨어져 있으며 이는 젊은 층일수록 더하고 한다. 그의 말대로 생각을 요하는 토론 방식은 주목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토론 프로그램이 어깨의 힘을 빼고 있다. 한층 가벼워지고 재밌어졌다. 아니 토론이 적극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른바 엔터커션(Entercussion) 프로그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엔터커션(Entercussion)은 ‘Entertainment’와 ‘Discussion’의 합성어다. 몇 가지 사례를 볼 수 있는데 KBS, MBC, SBS 같은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흥미로운 일상생활에 관한 다양한 아이템과 그에 관한 패널의 토론으로 재미를 더한다.

재밌고 다채로운 주제를 바탕으로 한 토론에서 MBN의 ‘황금알’을 빼놓는다면, 정말 서러울 법했다. ‘황금알’이 종편채널 프로그램임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예능적인 요인과 시청자맞춤식 아이템도 주효했지만 무엇보다 ‘토론’ 방식이었다.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알짜 이야기 각 분야 최강 고수들이 들려주는 황금알같은 토크 대격돌!’이라는 구호 아래 건강, 의료, 교육, 연애, 결혼, 고부갈등, 재테크 등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연예인들이 사적인 경험담이나 견해를 밝히고 여기에 전문가들의 지식이나 진단을 곁들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호토론이 자유롭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여 서로 논박을 벌였다. 이로써 전문가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던 방식에서 벗어나면서 큰 재미를 줬다. 예컨대 이전에는 특정 질병에 대해서 의사 한 두 명이 말하는 진단과 처방법을 시청자들을 받아 적기에 바빴다.

하지만 ‘황금알’에서는 특정 질병에 대한 처방이 각 의사마다 의견이 달랐고 토론을 벌여 합의점을 이끌어냈다. 전문가들은 어깨에 힘을 빼고 알기 쉽고 재밌게 전달했다. 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방식을 응용한 MBN ‘속풀이쇼, 동치미’는 가족을 중심에 둔 주제로 나름 특화했다.

JTBC ‘썰전’은 한주간의 일어난 이슈에 대해서 토론하는 프로그램으로 출발했다.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 동시에 지상파 방송사에서 할 수 없는 발언이나 개인적인 경험담을 곁들여 흥미를 더하게 만들었다. 대중문화에 대한 주요 이슈도 적극 아이템으로 다루고 비평토론을 진행했고 역시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에서 잘 다루지 않은 연예와 스타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주어 주목을 받았다.

요컨대, 아이템이나 주제 그리고 패널 자체가 어깨의 힘을 뺐다. 기존의 토론 프로그램은 대개 정치적인 이슈가 많았다. 혹은 사회정책이나 경제적인 이슈가 많았다. 매우 전문적일뿐더러 단순히 정보의 전달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졌다. 더구나 전문가들의 지식이나 정보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지식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이나 주관적인 평가는 되도록 이면 거세돼야 했다. 시청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아이템들은 토론 주제가 되지 못했고, 그것이 심지어 토론 프로그램의 권위를 해친다고 보았다. 더구나 패널인 강용석 변호사, 이철희 정치평론가와 함께 시사 현안에 다루는 ‘썰전’의 진행자는 예능인 김구라라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기본 토론 프로그램과 다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줬다. ‘썰전’은 예능프로그램으로 출발했지만, 마침내 네티즌과 시청자의 힘으로 교양프로그램으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JTBC ‘비정상회담’에는 외국인들이 상호 토론을 벌이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이 특정 주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장면은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각국의 대표를 자임하는 외국인들이 견해를 밝히고, 찬반토론을 벌인다. 무엇보다 이 프로의 목표가 인상적이다. 목표가 한국의 젊은 청춘들을 위한 멘토링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토론 프로그램이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한정되는 것에 비해 훨씬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일상의 화두를 다루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 각국의 상황과 한국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좀 더 세분화된 토론 방식을 도입한 프로그램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JTBC ‘마녀사냥’이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지상파 방송에서 잘 다루지 않는 남녀 간의 연애와 성문제를 그린라이트라는 컨셉으로 다뤄 초기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프로그램은 단지 자신의 견해나 경험을 말하는 토크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상호 반박이나 설득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시청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무겁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기존 토론 방식과 다른 엔터커션(Entercussion) 프로그램은 토론 프로그램이 예능 프로그램과 결합한 것이다. 기존의 토론 프로그램과 달리 매우 다양한 아이템과 내용을 다룬다. 다른 토론 프로그램이 정보전달에만 치우치지만 어깨에 힘을 뺀 엔터커션 프로그램은 재밌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존 토론 프로그램이 자신들의 권위를 우선하는 것과 달리 엔터커션(Entercussion)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고, 어떤 것에 관심 있어 하는지를 우선한다. 요컨대 토론 주제나 토론 프로그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토론 프로그램인 것이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이런 방식의 토론을 접한 학생들이라면 토론에 관심을 기울일테니 훨씬 훌륭한 인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교육적으로도 어깨에 힘을 뺀 토론 프로그램이 던지는 메시지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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