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대통령’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서태지(사진 = 한경DB) |
서태지에겐 ‘문화대통령’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가 컴백할 때엔 매체들이 의례히 “문화대통령의 귀환”이라는 식으로 제목을 달고, 포털에 그 단어가 여러 번 노출된다. 심지어 한 케이블TV에선 ‘서태지는 과연 문화대통령인가’라는 타이틀로 진지한 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다. 서태지는 정말 문화대통령일까?
당연히 아니다. 서태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문화대통령은 될 수 없다. 이 시대의 문화는 상당히 다변화됐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대중문화계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서태지는 이 시대의 핫스타도 아니다. 지금의 서태지는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사는 뮤지션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자꾸 서태지에게 문화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서태지에게 돌을 던지라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과 같다. 문화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서태지가 그렇게 대단해?’라는 반감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서태지에게 좋은 점이 90% 정도가 있다 해도 그것이 문화대통령이란 절대적 위상에는 미칠 수 없기 때문에, 서태지가 어떻게 하든 문화대통령이란 프레임 속에선 욕을 먹게 돼있다. 케이블TV에서 진행됐던 서태지 문화대통령 토론에서도 반대측 토론자들이 ‘문화대통령이 가당키나 하느냐’라는 논리로 물고 늘어지자 옹호측에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문화대통령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프레임 속에선 옹호자들의 입지도 점점 좁아진다.
▲ 서태지는 자신을 문화대통령으로 내세우지 않는다.(사진 = 한경DB) |
서태지는 자신이 문화대통령이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남들이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이다’라고 선언한 다음, ‘정말 문화대통령 맞아?’라고 묻더니, ‘말도 안 되는 거품이었잖아. 서태지는 사기다’라며 스스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자작 비난극을 펼치는 구조다. 문화대통령이 서태지를 죽이는 덫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문화대통령이라며 너무 과도하게 절대화되다보니 필연적으로 생긴 반발심으로 인해, 서태지의 흠집을 잡아 깎아내리려는 움직임이 이미 생겼다. 인터넷에선 서태지의 음악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열정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이게 바로 서태지를 떠받드는 분위기에 대한 반감으로 생기는 일들이다.
언론은 서태지에게 문화대통령이니 신비주의니 하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갖다 덧씌우는데, 그런 타이틀들이 결국 서태지를 대중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지게 만든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그만둔 후 솔로 서태지로 돌아왔을 때 그는 스타 서태지가 아닌 뮤지션 서태지로 온 것이었다. 이젠 괴상하고 거창한 타이틀들을 거두고 뮤지션 서태지를 편하게 맞이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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