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위대한 뮤지션’ 신해철이 벗어날 수 없었던 악플의 굴레

입력 2014-10-27 17:18   수정 2014-10-28 09:27

▲ ‘뮤지션’ 신해철은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한 주저 없는 자기 목소리로 악플을 감내해야 했다.(사진 = 한경DB)


신해철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위대한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적인 대중문화의 시스템 속에서 일하면서도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를 확고히 구축해가는 사람을 특별히 ‘작가’라고 하는데, 신해철은 바로 가요계의 작가였다.

그는 솔로 2집에서부터 일반적인 가요와는 확연히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선보였다. 그 시절 음악 좀 듣는다는 젊은 사람들은 노래방에서 의례히 신해철의 노래를 불렀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통해 댄스음악 혁명을 일으킨 즈음엔 그룹 넥스트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락음악에 천착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주류 대중음악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당대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다. 음악성과 대중성 모두를 아우르는 비범한 감각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게다.

90년대가 놀라운 시대였던 것은 다양한 음악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공존했기 때문인데, 바로 신해철의 존재가 90년대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한 축이었다. 그가 본격적인 밴드음악을 하면서도 대중적 인기까지 유지했기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계의 지형이 더 풍부해졌던 것이다.

그의 예술적 열정은 90년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도 그는 음악 작업에 몰두했었고, 요즘 음악계에 나타나는 90년대의 귀환 분위기와 맞물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참이었다. 이런 순간에 쓰러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 신해철의 영역은 지금으로선 대체불가다.(사진 = 한경DB)


이렇게 위대한 뮤지션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악플을 달고 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해철을 내건 기사만 나오면 욕부터 해댔던 것이다. 그가 특별히 남을 해친 적도 없는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국의 음악계를 더 풍요롭게 한 사람을 비난했을까?

그는 민감한 사회 현안에 주저 없이 자기 목소리를 냈었다. 간통죄든가, 학생 체벌 등을 다룬 TV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직설적이고 단호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연예인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시선이 있다. 너무 나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예인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게 되면 그 주장의 내용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진다. 그런 시선을 감내하면서 그는 계속해서 자기 목소리를 냈다. 자신의 음악, 지신의 신념에 타협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개성적인 음악으로 한국 가요계를 풍성하게 했던 것처럼, 개성적인 견해로 한국 공론장을 풍성하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대가로 신해철은 악플의 멍에를 쓰고 살아야 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의 주장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그런 문제와는 별개로 이런 뮤지션을 잃는다는 건 우리 문화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신해철의 영역은 지금으로선 대체불가다. 만약 그가 사라지면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그가 담당했던 영역도 함께 사라진다. 우리 문화계는 그만큼 가난해질 것이다. 그저 신해철의 쾌유를 기원할 뿐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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