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5일 자 게재된 ‘공부는 시험기간에만, 평소엔 노래하던 아이’ 송상은①에 이어지는 인터뷰 후반부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올랐던 첫 작품,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대부분의 배우가 처음에는 작은 역할로 무대에 오른다. 무대 경험도 없는 초짜 신인에게 ‘주인공’이란 타이틀은 무겁고 버겁다. 뮤지컬 배우 송상은의 첫 작품은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다. 그는 놀랍게도 데뷔작부터 주인공인 ‘벤델라’ 역을 맡았다. 순전히 오디션을 통해 일궈낸 결과였다. 송상은은 오디션을 어떻게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벤델라처럼’이라고 답했다.
“오디션 시기가 기말고사와 겹쳤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시험보다 오디션이 중요했다. 오디션 당일 가장 먼저 답지를 내고 오디션장에 갔다. 시험기간 내내 공부를 제대로 안했다. 오디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내가 내린 답은 최대한 ‘벤델라처럼 행동하고 꾸미자’였다. 머리를 하나로 묶고 반 스타킹까지 신으니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평소보다 길게 느껴진다. 무언가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라면 더 애가 타기 마련이다. 송상은은 오디션 당시 5차까지 올라갔다. ‘하다 보면 이루어지겠지’라고 생각하던 송상은에게도 최종 진출은 꿈만 같았다. 모든 배우가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떨린다고 말한다. 송상은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디션보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고 말했다.
“거의 한 달 내내 연락을 기다렸다. 최종까지 올랐는데도 연락이 없더라. 하도 연락이 안 오니까 다른 배우가 붙었다고 생각했다. 당시 1지망에 ‘벤들라’를 지원했다. ‘벤들라’ 역으로는 낙방했다는 생각에 2지망에 적은 ‘안나’라도 제발 됐으면 했다. 마음을 거의 놓고 있을 때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먼저 무슨 역에 캐스팅됐는지 물었다. ‘벤들라’라는 대답을 듣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원하던 배역을 거머쥔 그녀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연습에 임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을 막 마친 송상은에게 뮤지컬 배우라는 타이틀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에 선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송상은은 공연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좋은 배우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컸다고 말했다.
“마냥 좋았다. 연습 당시 배우들이 걱정 안 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함께하는 배우들이 매우 좋아서 매일같이 함께했다. 즐겁게 연습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첫 공연 날이더라. 그날 어떻게 무대를 마쳤는지도 모르겠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잘해야지’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녀에게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첫 작품이었던 만큼 의미도 크다. 송상은의 데뷔작은 그녀에게 많은 경험을 가져다줬다. ‘뮤지컬 어워드’ 축하무대에 오른 경험은 데뷔작이 가져다준 선물 중 하나다. ‘뮤지컬 어워드’는 뮤지컬계의 한 해를 정리하는 시상식이다. 이 큰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다. 송상은은 당시 갓 데뷔한 신인으로 축하무대에 올랐다.
“시상식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당시 나는 데뷔 3일 차 신인이었다. 세종회관 대극장이 정말 크다는 사실을 그날 실감했다. 시상식에는 내로라할만한 뮤지컬 배우들이 모두 자리해있었다. 객석에 있는 배우들을 보니 더 떨렸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축하공연에 들어가서도 긴장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수를 많이 했다. 극에 욕 대사가 많다. 정신없는 상태에서 대사를 바꾸려고 하니 이상한 말이 저절로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데뷔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배우로서의 성장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역시 송상은에게 특별하다. 작품은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죽은 첫 사랑과 닮은 남학생을 남자 선생님이 사랑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다. 송상은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현빈’을 짝사랑하는 ‘혜주’ 역을 연기했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혜주’ 역을 맡았었다. ‘혜주’는 ‘현빈’을 좋아하는 학생이다. 새침데기 같은 성격에 상처도 잘 받는 아이다. 가장 많이 공감 갔던 캐릭터다. 극 중에서 ‘혜주’가 울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부를 때 저절로 눈물이 났다. 등을 돌리고 서 있는 ‘현빈’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더라. 지금도 ‘현빈’의 등이 생각난다. 비가 오면 ‘혜주’를 떠올리게 된다. 비 오는 여름날과 똑 닮아있는 캐릭터이자 작품이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청소년의 사랑을 담고 있다면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조금 더 깊숙한 사랑을 담는다. 작품에서 ‘인우’는 너무도 사랑한 ‘태희’를 잊지 못한다. 오히려 ‘태희’의 죽음 이후 ‘인우’의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말하는 사랑은 ‘어른의 사랑’이다. ‘인우’는 죽음도 막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 전작인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는 연기에만 신경을 썼다.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랑’이란 의미는 더 그렇다. ‘혜주’로 무대에 오르면서 아이의 사랑과 어른의 사랑을 동시에 느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작품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배우로서의 생각도 깊어졌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배우 송상은과 인간 송상은을 성장시켜준 작품이다.”
“좋은 사람들과 연을 맺어준 선물 같은 작품”
송상은은 요즘 뮤지컬 ‘그날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뮤지컬 ‘그날들’은 송상은에게 ‘사람을 선물해준 작품’이다.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다수의 사람이 함께 만드는 공연은 사람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 송상은은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작업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큰 숙제다. 출연진들과 사이가 좋아야 공연도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서먹하거나 어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 무대 아래에서의 관계가 중요하다. 뮤지컬 ‘그날들’에서 만난 배우들은 모두 호흡이 잘 맞았다. 공연 회차가 많아서 관계가 더욱 단단해졌다.”
송상은에게는 자신만의 철칙이 한 가지 있다. 재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다소 특이한 수칙이다. 뮤지컬 ‘그날들’은 송상은이 데뷔부터 지켜온 철칙을 깨주었다. 자신의 신념을 깨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작품이다. 송상은은 왜 자신만의 고집을 꺾고 다시 무대에 올랐을까.
“재공연에 자신이 없었다. 전보다 나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비슷한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다면 의미가 없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재연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좋은 작품일수록 아쉬움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의 느낌을 깨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뮤지컬 ‘그날들’은 이런 생각을 바꿔준 작품이다. 배우끼리 워낙 사이가 좋아서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의 결여로 생겨난 철칙을 배우들이 깨줬다. 나에게 있어 뮤지컬 ‘그날들’은 정말 특별하다.”
뮤지컬 ‘그날들’은 8개월간의 공백을 깨준 작품이다. 송상은은 이번 8개월이 데뷔 이후 첫 휴식기였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데뷔 후 쉼 없이 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소위 말하는 ‘소처럼 일했다’는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처음으로 맞이한 휴식기는 송상은에게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했다.
“데뷔 후 한 달 이상 쉰 적이 없다. 그간 열심히 달려왔다. 휴식을 취하면서 나만의 시간이 생겨 좋았다. 얼마쯤 쉬니까 몸이 찌뿌듯했다. 뮤지컬 ‘그날들’ 연습에 들어가면서 이유를 깨달았다. 스스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뮤지컬을 하고 있을 때 정말 살아있는 기분이 들더라. 무대에서 박수와 환호를 들으니 살아있음이 분명해졌다. 나는 뮤지컬을 즐기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뮤지컬은 ‘놀이’와도 같다.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았다. 작품을 하면서 느껴지는 앙상블과 기운이 아주 좋다. 뮤지컬 배우로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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