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로서 동물을 치료하다 보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경우 경구제(먹는약)를 통한 내과적 처치가 필수적이다. 사람의 경우 복약 지도를 통해 경구제를 섭취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이 없으나 동물의 경우에는 스스로 약을 먹지 않으므로 투약의 어려움이 있다. 매번 투약간격에 맞추어 동물에게 약을 먹이는 일이 비숙련자들에게는 엄청나게 어렵고 번거로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번 화에서는 일반적인 반려동물의 투약 뿐 아니라 맹수류, 대형초식동물, 파충류 등의 약물 투약에 대해 다루어 보겠다.
약 물 투 약
보통의 개, 고양이의 경우 보호자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경구제를 투약할 수 있다. 경구제제는 크게 정제, 캡슐, 산제(파우더), 시럽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 약물의 특징에 따라 투약방법이 다르다. 정제나 캡슐의 경우 사람은 물과 함께 먹을 수 있으나 반려견, 반려묘의 경우 그런 식의 투약은 어렵고 손으로 알약을 목(식도쪽) 깊숙이 넣어 삼키도록 유도하거나 알약 투약기(pill dispenser) 등을 이용해 투약할 수 있다. 산제의 경우 소량의 물에 녹여 소형 주사기(바늘을 제거한)로 어금니 쪽으로 흘려 투약할 수 있으며, 시럽 역시 같은 방법으로 투약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물리적인 보정이 가능한 경우 실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보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어떻게 약을 먹일까? 호랑이에게 약을 어떻게 먹일 것이며 3톤이 넘는 코끼리에게 어떻게 약을 먹일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동물이 좋아하는 먹이에 약을 숨겨서 먹이는 것이다. 물론 약물의 흡수에 영향을 미치거나 화학적 성분을 변화시키는 음식의 사용은 지양하면서 먹여야겠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류에게 약을 먹일 때는 보통 산제(파우더) 형태로 약을 조제하여 좋아하는 닭고기나 기타 육류에 넣어서 급여한다. 알약형태로 급여 시 고기만 먹고 알약만 쏙 쏙 빼내는 녀석들을 여럿 봐 왔기에 되도록 알약급여는 하지 않고 파우더 형태로 조제하여 고기에 칼집을 넣어 주머니 형태로 약을 넣을 공간을 만들어준다. 고기는 되도록 한입크기로 주는 것이 좋다. 너무 큰 고기에 주면 쓴맛을 느끼고 더 이상 먹지 않을 수 있어서 정확한 약물투약이 어렵기 때문이다.
코끼리의 경우 투약에 더욱 어려움이 많다. 코끼리는 생각보다 지능이 좋아서 아주 조금만 쓴 맛이 나도 약을 뱉어내는 경우가 많다. 먹이에 넣어서 급여할 때에도 주의를 요한다. 예전에 배추에 약을 넣어서 급여를 시도했더니 한번 씹고 쓴 맛을 느끼고 신경질 적으로 배추를 뱉고 발로 밟았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배추를 먹지 않았었던 일화가 있다(약이 안 들어 있어도). 코끼리의 경우 문헌 상에도 과일에 숨겨서 투약을 한다고 되어있지만 모든 과일에 다 해당되지는 않았다. 예민한 코끼리의 경우 단맛이나 신맛이 강한 과일에 약을 섞어서 먹이는 방법이 효과적이었다. 어떻게든 약을 먹여야 하므로 여러 가지 과일을 사서 제일 좋은 과일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오렌지였다. 이 녀석은 덕분에 다른 싼 과일들 보다 비싼 오렌지를 한동안 먹을 수 있었다. 코끼리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만큼 한 번에 먹어야하는 약의 알 수도 많다. 그렇다고 오렌지 하나에 너무 많은 알약을 넣으면 쓴 맛이 느껴질 수 있어 한번에 10개 이상의 오렌지를 먹었다. 그래도 그렇게 약을 잘 먹고 빨리 나을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파충류의 경우 보통은 파우더 형태로 투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인 밀웜에 뿌려서 주거나 물약 형태로 만들어 밀웜에 주사하여 밀웜을 먹이는 방법 등을 사용한다.
이밖에도 여러 동물 종별로 투약방법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약물 성상의 변화 없이 안전하게 동물에게 약을 먹이는 것이다. 특별히 정해진 방법보다는 각 동물에 맞게 투약방법을 찾아서 치료할 수 있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의사 엄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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