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는 1888년(고종 25년) 경성전환국에서 발행한 1원 은화, 10문 적동화, 5문 적동화 3종이다. 이들 주화에는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들어가 있고, 주화의 앞면 상부에는 태극인장이 찍혀 있으며 좌우에는 ‘이씨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나무 가지가 교차되어 있다. 또한 뒷면 중앙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쌍룡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는 실질적으로 거의 통용되지 못했다. 신식 화폐를 주조할 만큼의 충분한 양의 금과 은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초 예상 보다 조폐 수익이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신식 화폐를 받아들일 만한 사회경제적 기반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외국 화폐가 유입되어 있었는데, 이 화폐들 중에서 강화도 조약에 의해 합법적 유통이 가능했던 일본 엔화가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 마저도 널리 유통되지는 못 했는데, 당백전이나 당오전과 같은 악전들로 인한 화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당시의 일본을 배척하는 문화 등이 일본 화폐의 유통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백년도 전의 화폐라니 신기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일본은 그때도 엔화를 썼나",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우리나라 화폐 변천사 신기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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