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소셜테이너’에 대한 오해… 이효리 논란은 뭘 남겼나

입력 2014-12-29 03:25   수정 2014-12-29 17:58

▲ ‘소셜테이너’ 이효리는 최근 쌍용차 발언을 통해 한 번 논란의 폭풍 속으로 진입했다.(자료사진 = 이효리 트위터)


소셜테이너로 이름을 얻은 이효리의 사례를 보면, 소셜테이너의 정체성과 그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개념에 대해 서로 대단히 오해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좋아 보이거나 멋진 것과 달리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과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효리는 유기농 콩 때문에 곤혹스런 경우를 당했다. 유기농이라는 단어 사용이 제도적으로 엄격하게 제한돼있는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유기농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게 좋은 의미만은 아닌데, 어느 순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존중받게 됐다. 단지 유기는 무기의 반대로 건강이나 행복에 필요충분하게 관련이 없는 데 말이다. 무기물도 건강에는 매우 중요하다. 유기농보다는 오히려 친환경이라는 말이나 친자연이라는 말이 더 낫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유기농이라는 농법은 실천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이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생산한 농산물이 얼마나 건강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약도 각 개인에게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아 보이는 개념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현실은 좋아 보이는 것을 얻으려면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유기농도 그렇기 때문에 가치를 지녔던 것이지만, 사실 좋아 보이는 것과 달리 실속은 없는 셈이다.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 발언을 하면 개념 연예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의식 있어 보이는 멋진 옷’을 입는 듯이 보인다. 즉 하나의 패션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의식과 개념도 몸에 걸칠 수 있다는 장식주의에 머물기 일쑤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효리는 최근 쌍용차 발언을 통해 한 번 논란의 폭풍 속으로 진입했다. 요지는 쌍용차의 특정 제품의 판매를 통해 수익이 늘어나면 고용문제까지도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물론 제품의 판매가 늘어난다고 해서 고용문제가 바로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효리가 언급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노동자를 괴롭힌 쌍용차 사안이 해결될 것이라 여긴다면 SNS를 통해 혁명을 바라는 것과 같이 허허롭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절실함도 있기 때문이지만 실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중요해 보였다. 거기에 ‘비키니’라니, 그 마음은 알겠지만 파장을 일으키며 언급될만한 발언인지 알 수 없었다. 소셜테이너라는 말이 무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이효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뛸 일은 절대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사실 소셜테이너라는 개념으로 묶이는 사람들의 역할은 논란을 통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들의 발언은 언제든지 매체의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발언이라고 해도 누가 언급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더구나 SNS파파라치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물론 유명한 이들은 가운데는 이러한 생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극 활용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이효리의 발언에서 비키니 댄싱 언급은 섹슈얼리티의 차원에서 더욱 더 눈길을 잡아끌게 만들었다. 걸그룹 맴버였던 이효리가 터닝포인트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섹슈얼리티였고, 주기적으로 그것을 상품으로 내세웠던 행보들이 제주도 이주 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이들의 고행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소셜이라는 단어와 별개로 엔터테이너는 엔터테이너이다. 무엇보다 소셜이라는 말에는 작지만 거대한 위선이 들어 있다. 어느새 소셜(Social)이라는 단어가 접두어로 사용되면 뭔가 착한 존재, 선한 주체인 듯싶다. 아니 다른 이들보다 뭔가 긍정적이고 그럴듯하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때문에 비롯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조차 에고센트릭 심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남들의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나 댓글만 달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 즉,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자기중심성을 강화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다.

당연히 유명인들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기를 좋게 강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소셜테이너라 불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좋게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면 안 좋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거나 규정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항상 비판이나 지적이 많다. 다른 이들을 낮추고 자신을 돋보이면서 지지자를 모으는 구도가 된다.

하지만 거꾸로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세상에 어떤 존재가 존립하는 것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인식과 통찰은 매우 제한적이다.

유명한 셀레브리티가 그러한 한계를 단지 유명하다고 뛰어넘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매우 노력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쉽지 않은 학습과 노동, 매니지먼트를 필요로 한다. 이효리의 좌충우돌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활동했다고 극찬을 할 필요는 없다. 테러리스트도 그 명분은 설득력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효리가 방송에서 극찬하며 언급한 오일 풀링이 의학적으로 대단히 위험할 수 있었던 사례는 얼마나 소셜테이너 활동에 엄격성과 신중함이 요구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한 정보를 통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유명할수록, 영향력이 강할수록 조심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소셜테이너라는 아름다운 명분은 오히려 그 겸양과 신중함의 고삐를 오히려 풀어놓게 해 왔다.

그것이 바로 소셜테이너라는 말의 허구성이다. 엔터테이너는 누구나 소셜해야 한다. 특정 누군가가 전담하고 자신을 상품화하는 기제로 사용한다면,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만약 소셜테이너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그 길이 그냥 좋아 보이고 멋있는 길이 아니라 매우 힘든 고행의 길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품성 강화와 먼 길임을 항상 환기해야 한다.

그런 때라면 악플이나 비난의 논평도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들을 소셜테이너라는 형틀에 가두고 인위적으로 몰아가면서 도덕 윤리 프레임 비즈니스를 하는 매체의 작태가 소진돼야 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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