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1996년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그녀는 어느덧 데뷔한 지 20여년 이 다 되어 가지만 엄마 역할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 멜로는 물론 코미디,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통해 팔색조 매력을 선보였던 하지원이지만 ‘허삼관’은 선뜻 도전하기 어려웠다고.
“제 옷이 아닌 것처럼 자신 없는 역할이었어요. 많이 망설이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됐죠. 옥란이라는 캐릭터에 도전한 건데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편해 보이고 안 봤던 느낌도 난다고 하셔서 좋더라고요. 기존에 강하고 보이시하고 캐릭터 강한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드라마 ‘다모’에선 조선시대 경찰로, ‘시크릿가든’에서는 스턴트맨으로 액션연기를 선보였고, ‘황진이’, ‘기황후’ 등에서는 팜므파탈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몸을 쓰는 연기가 훨씬 힘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하지원은 힘을 뺀 허옥란 역할을 선택하기까지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힘들다고 생각해서 한 역할이라 잘 어울린다는 말 들으니까 더 좋았어요. 내추럴하면서 편안한 옥란이 하다 보니 삶이나 인생을 깊게 그리는 역할도 하고 싶어졌어요. 알고 있던 하지원보다 편해 보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있다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허삼관’ 찍고 나서 감사한 마음이 커요. 기대도 안 했는데 옥란이 역할 좋아해주셔서, 칭찬이 좋더라고요(웃음). 하길 잘 했구나 싶었어요. 생각하던 시야가 다른 쪽으로 넓어진 것 같아서. 액션도 좋아하고 다른 장르도 좋아하지만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내추럴한 모습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허삼관’에서 하지원은 세 아들의 엄마 허옥란 역을 맡았다. 결혼 전 허옥란은 마을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절세미녀였으나 허삼관(하정우 분)과 결혼 후 아들을 낳고 난 후에는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헌신하는 엄마가 된다.
“엄마 역할을 해서 달라진 점보다 생각지 않았던 부분들이 떠오른 것 같아요.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본 경우가 많이 없더라고요. 촬영하면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느끼게 됐고 예전에 생각지 않았던 부분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들이랑 같이 있으면 누나처럼 느껴지지 않고 엄마처럼 느껴져야 하기에 가족처럼 지냈어요. 일락이(남다름 분)가 달 보면서 만두 사달라고 했을 때, 엄마 마음으로 굉장히 찡했죠”
‘시크릿가든’ 마지막에서 세 아이와 함께 등장한 장면이 있었을 뿐 엄마의 모성애를 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엄마 역할을 ‘언제 해야지, 언제 해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 했어요.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해왔어요. 10대, 20대, 30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다르잖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불편하고 어색하지 않게. 계산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허삼관’이란 예쁜 영화에서 옥란이를 통해 엄마 역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인 것 같아요”
‘허삼관’은 배우 하정우의 두 번째 연출작. 하지원은 하정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배우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감독이기였기에.
“너무 좋았어요. 끌고 가야하는 작품에서 내려놓으니 편했어요. 현장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처음 부담되던 부분이 사라지더라고요. 현장에선 놀이터처럼 논 것 같아요. 계산하고 설정해서 임해야하는 작품도 있지만 모성애는 연습하거나 ‘이렇게 해야지’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현장에서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다, 나는 그런 여자야’라고 생각해서 가족처럼 지내다보니 스킨십도 자연스럽고 편해지더라고요. 느낌대로 한 것 같아요. 음악 듣고 하늘보고… 느낌대로 했어요. 잘 놀게 해줘서 감사해요”
1978년생인 하지원은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인생의 반을 살아 온 셈이다. 20여 년의 시간동안 여배우로 살아온 게 쉽지만은 않았을 터.
“좋아하니까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하니까, 힘든 현장에선 좋아하는 걸 찾아요. 사람이나 물건 등 즐길 수 있는 걸 찾으면 재미있는 현장이 돼요. 재미있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아요. 자그마한 것에 재미있어하고 감사하는 편이죠”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하며 살아서 시간 개념 없이 사는 편이에요. 여러 가지 복잡하게 한꺼번에 생각도 못하고요. 이 작품하고 있으면 여기에 이렇게 살고 그 순간에 충실한 편이라… 그때그때 감사하며 사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후회나 고민 같은 거 안한해요. 마음에 담아두는 게 없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때그때 다 하고”
‘허삼관’을 보는 내내 ‘하지원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0,60년대가 배경이고 엄마 역할이기에 특별히 화려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음에도 빛이 났다. 오히려 하지원의 피부톤을 한 단계 어둡게 보정한 거라고.
“‘뭐는 뭐다’ 이런 걸 안 만드는 편이예요. 아까도 말했듯 하고 싶은 얘기도 다 하며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요. 건강에는 집착해요. 건강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어요. 등이 굳으면 웃음이 안 웃어져요. 건강하면서 나오는 피부도 있는 것 같고, 내가 컨디션이 좋으면 일할 때 너무 재밌는데 아프면 하기 싫어지죠”
“좋다고 하면 장기전으로 돌입해요. ‘몸에 좋다, 피부에 좋다’하면 꾸준히 몇 년 하는 편이에요. 그게 처음엔 못 느끼지만 하다보면 건강해지고 좋아지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잘 안 먹던 과일도 꾸준히 먹다보니 피부에 좋더라고요. 마라톤 하듯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스트레칭도 처음엔 잘 못 느끼지만 계속 하게 되면 몸이 달라져요. 그런 것들이 좋은 것 같아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한 하지원은 요즘 더 바빠졌다. 아시아투어에 할리우드 러브콜 소식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피곤할 법한데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드라마에서 어린 역할이나 고등학생 같은 회상 장면이 나오잖아요. 아직까지 ‘어색하지 않다’, ‘괜찮다’고 해주셔서 지금까진 잘 찍었어요. 그런데 그런 고등학생은 이제 한 번만 하고 안해야… 욕심을 내려놔야하지 않을까요?(웃음)”
“할리우드는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하면 좋죠.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과 하는 거라 힘들 수 있는 작업인데 호기심도 많고 도전하는 것도 좋아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몸이 많으면 다 할 수 있을 텐데… 좋은 작품 재밌는 작품 많이 하고 싶어요”
(사진 = 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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