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이공계 선호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새 불거지는 문제입니다만 그에 따른 우려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내용 짚어봤습니다.
<앵커> 제가 어렸을 때는 이공계가 그렇게 각광을 받지 못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주로 기술이나 연구원 쪽으로 진출을 하다보니까 사회적으로 대우를 많이 못받는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이공계쪽이 취업이 아무래도 잘되니까 선호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기자> 맞습니다. 요즘 이공계 선호현상이 심화되면서 인문계 학생들의 이탈이 늘고 있습니다. 인문계를 전공하면서 이공계도 같이 전공하는,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면 될 텐데, 요즘에는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이공계로 전공을 세탁하는 이른바 호적 파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양대의 경우 올해 공과대에 지원한 인문사회 계열 학생수는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늘었습니다.
<앵커> 이렇게까지 학생들이 이공계로 몰리는 이유는 역시 취업때문이겠죠. 복수전공을 해도 될텐데 아예 이공계로 전공을 바꾸는 이유는 뭘까요.
<기자> 취업률 자체가 이공계로 몰리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공계 취업률은 인문사회계열에 비해 20% 높았습니다. 취업이 힘든 요즘 학생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이공계로 옮겨가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서 이공계 전공자로부터 과외를 받는 대학생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대학생이 대학생을 과외하는 겁니다.
복수전공을 왜 안하고 굳이 전과를 하느냐. 전과를 하면 본래 전공이 공식증명 서류에 기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출신 성분이 원래 인문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순수 이공계에 비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불안해서 전공 세탁을 하는 겁니다.
<앵커> 놀랍네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상당히 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교육을 위해서 학생 개인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정도로 인문계 취업이 어려운 건지..
<기자> 인문계 취업이 어려운 걸까. 이공계가 취업이 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이유는 정부부터가 이공계에 지나치게 편중된 정책을 펴고 있는 점에도 있습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4일 이공계 중심 대학구조개혁 방침을 내놨죠. 취업률문제,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과들을 이공계 중심으로 구조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인력수급 전망을 냈는데 오는 2023년까지 이공계 인력이 30만명이다 부족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육부는 올해 인문계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 정원을 늘린 대학에 최대 200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취업률이 낮은 인문대, 예술대, 사범대는 대폭 축소하겠다는 방침인 셈입니다.
<앵커> 정부부터가 이공계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고 있군요. 이렇게 되면 기존에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꼴이네요. 학생들 불만이 터져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기자> 지금 정부를 비롯한 사회적인 인식이 그렇습니다. 인문학이 취업에 필요 없으니 전공이 아니고 교양과목 정도로 인식하는 겁니다. 대학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취업양성소냐. 라는 물음이 나옵니다. 단순히 취업률이라는 잣대만으로 대학을 구조조정하겠다는 발상이 우려스럽다는 게 학계의 주장입니다.
<앵커> 한편으로는 사회가 이공계 중심으로 흘러가는 추세라면, 우리 교육도 그에 발맞춰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대학이 취업공장은 아니겠지만 학생들이 원하면 또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고요.
<기자> 지난해 삼성전자가 신입사원 85%를 이공계에서 뽑았죠. 현대차는 아예 전체를 다 이공계로만 선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도 산업계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경쟁력이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를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는 이공계 선호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산업기술진흥원이 성인남녀 1천142명과 청소년 5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출신인 부모가 다른 분야를 전공한 부모보다 자녀의 이공계 전공에 반대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녀의 이공계 지원을 지지할 의사를 묻는 질문에 다른 분야를 권유한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전공분야를 조사해보니, 이공계열을 전공한 부모가 11.6%로 가장 많았습니다. 의학?약학계열 4.7%, 상경계열 3.6%, 예체능 계열 3.4%, 인문계열 3.2% 순이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주로 이공계를 나온 부모들이 자녀에게는 이공계 지원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로군요. 왜일까요?
<기자> 이공계 지원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절반 이상의 부모가 ‘노력보다 경제적, 사회적 처우가 좋지 않아서’라고 말했습니다. 또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 직업선택의 폭이 좁아서 등의 답변도 있었습니다.
<앵커> 이공계에 대한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생각인 것 같은데, 정부 정책이 정말 이공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게 바람직한 건지 한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네요.
<기자> 이공계 쏠림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국인 거래회사와 협상 과정에서 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결과,‘지성과 문화수준이 높은 회사’라는 평을 받아 성공적인 협상을 이뤘다는 한 기업 대표이사의 시론이 얼마전 공개된 바 있죠.
실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이공계를 선호하는 취업시장의 현실이지만, 미래 기업들의 발전에는 창의력과 영감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 한 기업 CEO에 따르면 직급이 올라갈수록 어문학과 전공자의 업무능력이 출중한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줍니다.
<앵커> 해외 기업들의 사례가 어떤 지 궁금한데요. 해외도 이렇게 이공계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 말이죠.
<기자> 아이러니 하게도 해외는 우리와는 정 반대의 양상을 보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공계 기피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얼마전 ‘미국 학생정보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사학위 취득자 가운데 순수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18%에 불과했습니다. 10년전에 비해 1%포인트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우 전체 신입사원의 절반이상을 인문학 전공자로 뽑고 있습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뽑는게 아니라 장차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위해 투자한다고 보는 겁니다.
<앵커> 해외 기업들의 경우 멀리 보고 인재를 채용하고, 또 교육도 그런 장기적인 수요에 맞춰서 이뤄지는 데 이런 점은 우리도 좀 본받을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기자> 불과 3년전만 해도 이공계 홀대 현상이 국가적인 화두였습니다. 앞서 학부모들이 자녀를 이공계로 보내고 싶지 않다고 답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그런데 이제는 국가가 이공계를 오히려 키우고 장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지나치게 그때그때 산업수요에 맞게 흘러가다보니, 중심이 잡혀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물음이 필요합니다. 학생들 교육을 산업계가 좌우할 것이냐, 아니면 교육기관인 대학들이 결정할 것이냐. 하는 물음입니다.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대학이나 기업들이나 정부나 모두 마찬가지 목표일텐데, 여기서 말하는 좋은 인재라는 게 뭔지, 그 정의부터가 모두 다릅니다.
이제 사회가 바라는 인재는 융합형 인재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이공계냐 인문계냐 이런 구분부터 조금 달라져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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