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펀치’ 마지막회, 그들을 잡기 위해선 김래원의 목숨이 필요했다

입력 2015-02-21 03:37   수정 2015-02-21 19:43

▲ 드라마 ‘펀치’ 마지막회까지 빼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신하경역의 김아중(사진 = SBS)


박경수 작가의 ‘펀치’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추적자’, ‘황금의 제국’에 이은 권력 3부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이 3부작은 한국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리즈 기획 반열에 올랐다. ‘펀치’는 재미면에서 이 세 편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추적자’는 김상중의 세계가 나올 땐 권력의 비정한 생리를 냉정하게 그렸지만 손현주의 세계가 나올 땐 신파 분위기로 흘렀었다. ‘황금의 제국’땐 등장인물들이 너무 자주 옛날이야기를 해서 몰입이 종종 깨졌었다. ‘펀치’는 아버지의 부정이 등장했지만 신파성이 과하지 않았고, 등장인물들이 종종 옛날이야기를 했지만(예컨대 이태준 형제가 어렸을 때 캐먹던 칡뿌리 이야기)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펀치’가 가장 박진감 넘치면서도 깔끔한 재미를 선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도 한국드라마 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였다. ‘펀치’가 그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을 너무 인위적으로 운율을 맞춰서 만드는 경향만 조금 자제하면 더욱 빛나는 한국 드라마의 금자탑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추적자’는 평범한 경찰이 여당 대권주자의 범죄를 캐는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 최상층의 권력구조를 해부했다. ‘황금의 제국’은 철거민의 아들이 재벌의 성채 안으로 진입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정치권력 위에 선 자본의 질서를 해부했다. ‘펀치’가 해부한 건 그 최상층 아래에서 수족 노릇을 하는 특수한 집단이다. 바로, 가진 자들의 창칼 노릇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곤 하는 검찰이었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권력집단이다. 검사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영화 ‘부당거래’에서 이미 그려진 바 있다. ‘펀치’는 ‘부당거래’보다도 훨씬 세밀하게 검찰의 권력을 그렸다. 검사끼리 싸우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서로 갖은 수단으로 공격하는 와중에 검사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극중에서 검사들은 누굴 수사할지, 누굴 풀어줄지, 누굴 기소할지, 어떤 죄목을 적용할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기들끼리 전쟁을 치렀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를 수사해서 기소할지 말지를 검사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었고, 공익적 증언을 한 증인을 죄인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 드라마 ‘펀치’ 마지막회까지 긴장감을 살린 주인공들. 왼쪽부터 조재현, 김아중, 김래원(사진 = SBS)


국민은 이런 힘을 가진 검사가 국민을 위해서 그 힘을 써주길 바란다. 바로 그것이 정의일 것이다. ‘펀치’에선 정의를 말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비췄는데,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던 5공의 기억을 통해 이 땅에서 정의가 얼마나 공허한 말로 추락했는지를 표현한 장면으로 읽혔다.

그런 현실 속에서 주인공 박정환(김래원 분)과 그 부인인 신하경(김아중 분) 검사는 정말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검사로 등장했다. 이들은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분)을 상대해야 했고, 전 법무부장관이자 총리후보자였으며 특별검사인 윤지숙(최명길 분)을 상대해야 했다. 검찰총장은 개천에서 난 용이었고 전 법무부장관은 법조계 로열패밀리 출신이었다.

이태섭(이기영 분)은 “형법책은 윤지숙이 즈그 아버지가 쓰고 민법책은 즈그 외할아버지가 쓰고 내 학교 당길 때 법대 학장은 삼촌인기라”라며 “아따 고 집안, 법으로 열두 폭 병풍을 쳤는기라”라고 윤지숙의 집안을 소개하며 “특별하게 태어나가 특별하게 살아오신 특별검사님(공주님)”이라고 했다. 박정환과 신하경은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싸웠다.

주인공 부부 둘 다 무소불위의 검사였다. 서민에겐 생사여탈권을 쥔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검사권력으로도 최고위층은 잡기 어려웠다. 특히 ‘특별하게 태어나 특별하게 살아오신 상위 0.1% 공주님’은 끝까지 주인공을 괴롭혔다. 결국 피를 흘려서야, 한 사람의 목숨을 바쳐서야 그들을 잡을 수 있었다. 마침내,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진짜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은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냉소가 나온다. 고위층에게만 법이 친절하다는 의미다.

‘펀치’ 마지막회에선 검찰총장과 총리후보자가 모두 주인공의 목숨값으로 잡혔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총리도 되고 장관도 될 것이다. 그들은 국민 앞에서 말로만 정의 구현을 외칠 것이고 국민의 무력감과 불신은 커져갈 것이다.

부정불의한 현실을 냉정히 해부하던 ‘펀치’는 마지막에 정의를 실현하며 시청자에게 판타지를 줬다. 현실의 답답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결말이었다. 박정환이 윤지숙의 뺑소니 증거가 되는 영상 파일을 전달하는 막판 반전은 시청자의 뒤통수에 ‘펀치’를 날린 명장면이었다. 박경수 작가가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펀치를 날려줄지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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