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열녀춘향’…“내거인 듯 내거 아닌 춘향”

입력 2015-03-17 13:59   수정 2015-03-17 15:29



김치녀, 된장녀 등의 신조어가 많이 생겨난다. 이는 좋은 남성을 만나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려 애쓰는 여성들을 비난하기 위해 나온 말들이다. 이런 부류의 여성들은 과거에도 분명 존재했을 텐데 그때는 이런 여성들이 비난받지 않았다. 권위에 관해서 남성과 여성은 비교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위에 관해 남성이 여성을 비난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여성의 권위 신장의 증거이다.

고전과 시의성의 관계

춘향의 이야기는 참 많은 작품으로 재탄생 된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마도 춘향이는 신분 구분이 엄격하고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 시대에 의지적으로 자신의 소견을 표출한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그녀의 삶에서 묻어나는 센세이션함이 드라마로 구성하기에 적절하다는 점에서 인기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센세이션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이미 많은 작품들을 통해 표현된 것으로 안다. 현대에는 여성이 결정의 주체자로서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고작 사랑의 감정 하나를 부르짖어 유명세를 탄 춘향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로운 자극제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춘향이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막이 오른 작품이 있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연극 ‘열녀 춘향’ 이다. 더군다나 이번 연극 ‘열녀 춘향’은 실험적인 작품이 주로 공연되는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 공연되고 있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이러한 극장 선택은 관객으로 하여금 우려 섞인 기대로 충만한 설렘을 안고 극장에 들어서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월매’ 너로 정했다

극장에 들어서면 진한 화장에 머리를 올린 여성이 관객을 맞이한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집에 초대된 사람들을 마중하는 듯 적극적으로 자리를 배정해주기도 하고 관객을 매우 살갑게 대한다. 이 여성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같은 지점에 서서 귀가하는 관객들을 배웅하는데 그녀가 작품에서 자리하는 역할은 바로 월매이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에서 이렇다 할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월매인지 한눈에 눈치 채기란 쉽지 않다. 월매는 10명의 춘향이가 등장하는 동안 무대 한켠에 서서 춘향이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월매가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은 사또와 레슬링을 펼치던 춘향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춘향이를 돕는 것뿐이다. 또한 춘향이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녀들을 조용히 응원하는 게 전부이다. 이렇듯 그녀는 존재감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춘향이들 보다도 강렬한 인물이다. 동시대의 여성상을 하나씩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춘향을 자궁으로 품은 여성인 월매는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고 여성의 권위가 신장된 현시점의 사회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강력한 장치로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월매의 관객 마중과 배웅은 무게가 실린다. 고전에서도 월매는 기가 센 여인으로 그려지지만 자신이 주체자가 되어 대중을 초대할 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연극에 등장한 현대의 월매는 대중을 초대하여 자신의 딸 춘향이를 통해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한다. 이렇듯 작품은 고전에서 주변인으로 등장했던 인물을 비중 있는 상징으로 활용하는 파격을 보여준다. 이것은 분명 김현탁의 ‘춘향전’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움 중 하나이다.



탈 경계가 주는 재미

이번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탈 경계’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무대 전환을 배우들이 직접, 그것도 대놓고 한다. 따라서 암전도 거의 없고 배우들의 무대 전환 장면이나 등퇴장 모습은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 관객에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던지며 무대로 올라간 첫 번째 춘향이의 등장이나 공연이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는 음성을 노출시킨 부분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관객의 참여 유도를 통해서 탈 경계를 시도한 부분도 눈에 띤다. 세 번째 춘향이가 자신이 만든 고추전을 관객에게 직접 먹이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다. 또한 무대 위에서 연기를 마친 배우들이 객석으로 퇴장해 작품을 관람하는 부분도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이는 배우를 객석에 앉힘으로서 관객과 동등한 시각을 형성해 연극과 연극 아닌 것의 탈 경계를 형성하고자 유도한 지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객석에 앉은 배우들은 모두 남자인데, 작품이 남성들을 변화의 주체로 삼고 있지 않음을 상징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관객은 이러한 탈 경계의 지점에 작품에 이입함과 동시에 자신과 이입하는 ‘혼란스러운 재미’를 경험하게 된다.

고전과 동시대를 버무리기 위한 고뇌와 소통의 흔적

춘향이라는 고전의 인물을 바탕으로 하면서 가장 큰 난제는 아마도 고전어로 된 대사를 동시대성과 버무리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이번 작품에서도 고전어를 삽입하여 작품을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보인다. 작품에서는 각기 다른 춘향이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미인대회, 레슬링, 파자 놀이 등을 통해 고전어를 담을 수 있는 다양한 그릇들을 등장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춘향이들이 내뱉는 대사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전달력 떨어지는 고어를 현대성 짙은 무대 연출과 굳이 배합시킨 것은 연극 기호로써 대사를 배치하여 그 내용 보다는 상징성을 부각시킨 의도에 의한 부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어가 들리지 않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만일 대사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바가 분명한 것이 의도였다면 상당히 떨어지는 대사전달력은 이 공연에서 가장 먼저 보완할 점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춘향이들은 이긴다

흰색 상의에 짧은 청 반바지, 하이힐, 풀 메이크업과 단정한 헤어스타일, 이 모든 것들은 열 명의 춘향이가 무대 위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준 이미지이다. 이렇듯 춘향이들은 무대 위에서 풍부한 여성성을 장착한 뒤 등장한다. 이는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의 다양한 매력들이기 때문에 남성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여성성으로 무장한 춘향이들은 각 에피소드에서 전부 승리하거나,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매듭이 지어진다. 이는 과거에는 여성성이 잘난 남성을 획득하는 데만 쓰였던 것과 달리, 현대에서는 남성에게 선택받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자신의 만족을 위함이며 남성 이상으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점에 대해 시사한다. 때문에 더 예쁘고 더 세련된 모습의 춘향이들은 항상 이긴다. 이는 완벽한 외모를 유지하면서 남성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는 현대 여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하이힐 말고 다른 건 없었을까?

작품이 선택한 실험적인 표현 방식은 ‘탈 경계’를 활용했음에도 공감 가능하다. 그런데 그 핵심 내용인 여성의 권위 신장은 그 속도에 비해 이미 색이 바래가고 있는 소재다. 그런 점에서 걸 그룹의 군무로 장식된 엔딩 끝에 여배우들이 벗어 놓고 간 하이힐로 채워진 무대는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이힐이 여성의 자존심이며, 하이힐의 높이가 그녀들의 권위를 의미하는 여성성, 사회진출, 경제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성된 장면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하지만 앞으로의 여성들의 모습을 상상할 여지를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월매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상승세에 대해 일정 부분 어필하고 있지만 이 부분이 하나의 자면으로 구성되었더라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힐은 조금 진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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