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13일부터 본사 기준으로 자율출퇴근제를 전면 시행한다.
주당 40시간을 채우고 하루에 최소 4시간 이상을 일하면 `알아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다. 퇴근도 밤 10시까지 본인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2012년 수원 DMC연구소에 시범 도입돼 지난해 7월부터 연구개발(R&D)과 디자인 직군 중심으로 확대했고, 이번에 전 직군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삼성전자는 해외사업장에도 이 제도를 확산할 계획이다. 삼성전기[009150]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006400] 등 다른 전자부문 계열사로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의 자율 출퇴근제는 과거 이건희 회장이 도입한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만큼이나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대기업에도 이런 식의 `유연 근무 DNA`가 확산될지 관심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이미 부분적으로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한 기업들도 꽤 있다.
업종 특성상 불가능한 기업도 있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의 `플렉시블(flexible) 근무제`를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고용당국이 추진한 시간선택제 일자리와도 적잖은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플렉시블 근무는 창의성과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혁신의 일환으로 검토될 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 SK·LG·한화·효성[004800] 적극적…팀별 자율권도 부여
SK그룹은 2013년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사람·문화 혁신 차원의 권고 지침을 내놓았다.
계열사별, 팀별, 부문별로 알아서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현재 SK㈜, SK이노베이션[096770], SK텔레콤[017670] 등 주력 계열사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결정권자는 임원급의 실장과 부문장 등이다. 자율적으로 해당 실·팀의 근무형태를 감안해 정하는 체제다.
SK 관계자는 "홀딩스(지주회사)의 어느 팀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체제로 운영되기도 한다"고 예를 들었다.
업무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유연 근무의 대상이 팀 전체일 수도 있고 특정 직원일 수도 있다. 육아 문제도 고려한다
LG그룹은 LG생활건강[051900], LG이노텍[011070] 등 일부 계열사에서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이미 2005년부터 5가지의 출퇴근 시간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오전 7시∼오후 4시, 오전 7시30분∼오후 4시30분, 오전 8시∼오후 5시,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 오전 9시∼오후 6시 등이다.
LG이노텍은 2010년부터 워킹맘, 원거리 출퇴근자 등을 위해 오전 7시∼오후 10시 사이에 8시간의 근무시간을 채우면 자유롭게 출퇴근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화그룹은 남녀 직원 구분없이 육아기 출근시간 조정제를 희망자에 한해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출산부터 만 8세(초등 2학년)까지 자녀를 둔 직원들이 필요에 따라 출근시간을 오전 9∼10시 사이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 계열사별 차이가 있다.
또한 임신 여직원의 모성 보호를 위해 2013년부터 임신중 근로시간단축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임신기간에 30일을 선택해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다.
효성그룹에서는 IT 비즈니스 솔루션 계열사인 효성ITX[094280]가 다양한 시간제 및 선택적 일자리 제도를 운영 중이다. 효성ITX 임직원의 약 5%인 300여 명을 이같은 형태의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여성 직원 비율이 높아 출퇴근 부담 없이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결혼 등으로 인한 여성인력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근무 가능시간 및 여건에 따라 3, 4, 6시간 단위로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단시간 근로제와 주중 근무 요일(4∼5일)을 지정해 일하는 선택적 근로제를 도입했다.
또 출퇴근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시차 출퇴근제`,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휴직 발생 시 대체 인력을 투입해 공백을 보완하는 직무대체제 등도 있다.
공기업에도 자율 출퇴근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한전KDN은 본사 지방이전을 계기로 업무 의욕을 고취하고자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알아서 정하는 `근무시간 선택제`를 이달부터 도입했다.
주 5일(40시간)을 일하는 기존 근무체제의 골간은 유지하되 직원들이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게 자율권을 준다. 다만 오전 8시∼오후 8시 사이 하루 4시간 이상은 근무해야 한다는 기준을 뒀다.
종전까지 출퇴근 시간을 1∼2시간 가량 조정할 수 있게 하는 수준의 유연근무제를 운영해오다 이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 `중후장대` 업종에는 `시기상조`
하지만 유연근무제에 미온적인 기업도 상당수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자율 출퇴근 방식이 전혀 검토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현대차[005380]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생산공장과 영업조직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유연 근무는 현실적으로 도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구개발(R&D) 직군도 개발이 완료되면 양산 상황을 라인에서 확인해야 한다. 철저하게 라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라고 부연했다.
범 현대가 그룹의 기업문화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과거 오전 8시에 출근해 일하고 오후 5시30분에 조금 일찍 퇴근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는데, 범 현대 계열에서는 대부분 이같은 출퇴근 타임 테이블이 굳어진 셈이다.
이밖에 중공업과 제철도 업종 특성상 유연근무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통상적으로 제품과 사업장의 규모가 큰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일수록 플렉시블 근무 시스템을 도입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유통업도 유연근무제와는 거리가 있다.
롯데와 신세계[004170] 계열사 중에는 롯데마트가 유일하게 시간대별 조근무를 하는데 이는 마트 영업시간이 길어 불가피하게 조를 짜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유연근무제로 볼 수는 없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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